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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차별금지법은 인권국가의 최소한의 조건 |
<한겨레>가 연재하고 있는 ‘차별 대신 차이로’ 시리즈 기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자나 장애인, 미혼모뿐 아니라 성별과 지역·학력은 물론 정치적 성향과 피부색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동사무소와 보건소를 오갈 때마다 “왜 미혼모가 됐느냐”는 질문 때문에 바깥출입이 꺼려진다는 김아무개씨나 사우나 출입까지 눈치를 봐야 한다는 동성애자 이아무개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한때 각 정당들이 지역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할 정도로 출신 지역에 따른 차별은 알게 모르게 우리 생활 속에 스며 있고, 이주민에 대한 모욕적 행위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것 이상으로 빈발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벌써 세 번째 추진중인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가 이번에도 다시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한다. 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이 대표발의해 지난 9일 입법예고를 마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어제까지 무려 10만6643건의 댓글이 붙었고 대부분이 반대 의견이었다. 문제는 종교적 이유로 동성애에 반대하는 의견이 대다수란 점이다. 특히 일부 보수 기독교계에선 동성애자와 종북세력, 성범죄자를 한 묶음으로 ‘사회 3대 악’이라며 척결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고 한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편협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최 의원 등이 제안 이유에서 밝혔듯이 이 법안은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장애인과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법들을 각각 따로 두는 대신 이를 포괄하면서 적용 범위를 확장해 출신 지역, 피부색, 학력, 나이, 사상, 병력, 종교, 성적 지향,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 등을 이유로 한 차별올 금지하고, 이로 인한 피해를 소송 등으로 구제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모름지기 민주국가, 인권국가라면 최소한 이런 원초적 차별과 불평등을 용납해선 안 된다. 유엔 인권이사회가 각국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권유하고 있고, 대부분의 인권선진국이 그런 법과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이미 입법을 약속한 사항이란 점도 잊어선 안 된다.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이번에도 차별금지법 입법이 좌절된다면 우리나라는 인권후진국이란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특히,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차별 같은 우리 주변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 대법원의 동성 결혼 재판은 대서특필하면서 혹시 우리 곁의 동성애자 차별 문제는 소홀히 다룬 적은 없는지 언론들도 함께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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