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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북 메시지 혼선, ‘신뢰 프로세스’ 신뢰 흔든다 |
대북 메시지를 둘러싼 정부 안의 혼선이 심각하다. 북한과의 대화 문제를 두고 청와대와 통일부가 11일부터 사흘간 두 차례나 엇박자를 냈다.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마저 정부 방침과 전혀 다른 말로 혼란상을 부추기는 일도 벌어졌다. 남북 간의 오랜 소통 단절 때문에 제때 통일된 신호를 보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될까 말까 할 지경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청와대의 주철기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그제 밤 갑자기 “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이 그날 낮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11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빈껍데기”라고 비난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애초 통일부 쪽은 이를 대화 거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평통 발표의 형식과 내용을 뜯어볼 때 우리 쪽에 추가 양보를 요구하며 대화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몇 시간 만에 통일부의 이런 의견을 뒤집었다. 그리고 친절하게 ‘대통령의 뜻’이란 해석까지 덧붙였다.
11일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통일정책 책임자인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낮에 개성공단 문제를 풀기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장관도 청와대 참모들도 대화 제의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밤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대화 제의라고 최종 정리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홍원 국무총리는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주먹을 쓰겠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는 그 주먹이 소용이 없다고 느끼게 해야지, 그런 사람에게 사과나 대화를 하자는 것은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고 본다”고 전혀 감이 다른 얘기를 했다.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는 건 대북정책과 같이 국가 운명이 걸린 중대한 일이 제도가 아니라 주먹구구로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개입이 너무 과도하게 노출되고 있다. 정책 조율이 제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대통령 혼자의 결정으로 이뤄지는 일이 반복되면, 일선 행정부서가 책임감과 창의성을 가지고 일을 추진할 리 없다. 대통령 눈치만 살필 게 뻔하다. 더 큰 문제는 상대가 우리 당국자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신뢰 프로세스라고 이름 붙인 정책이 본격 가동도 되기 전에 신뢰의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혼선이 빚어질 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넘어가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무엇이 잘못됐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철저히 점검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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