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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미 대화, 기싸움보다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
북한과 미국이 핵 문제 등을 풀기 위한 대화 시작의 조건을 놓고 거센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화 쪽으로 국면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전이지만, 양쪽 입장 차이가 커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냉철한 현실 인식에 근거한 유연성이 필요한 때다.
북쪽은 그제 국방위원회 정책국 이름으로 내놓은 성명에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해제, 한반도와 주변지역에서 핵전쟁 연습 중단 및 핵전쟁 수단 철수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또 지난 16일 외무성 대변인은 ‘대북 적대시 정책과 핵위협 공갈 포기’를 요구했다. 북쪽의 이런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 우선 유엔 안보리가 내린 결정을 미국과 한국이 해제할 수는 없다. 군사훈련 중단도 일정한 단계에서 협상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대화의 전제조건이 되긴 어렵다. 더 큰 장애물은 핵·미사일에 대한 북쪽의 집착이다. 국방위는 ‘한반도 비핵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군대와 인민의 흔들림 없는 의지’라면서도, 미국 등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핵무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북쪽이 핵을 포기할 전망이 없다면 협상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북쪽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북쪽이 먼저 핵을 포기하겠다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에는 북쪽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낼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4년간의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전략적 비인내(개입)’ 정책을 추구하겠다면서도, 대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의 협력을 얻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중국의 협력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미국이 북쪽의 ‘선 핵포기 조처’만을 요구해서는 대화가 시작되기 어렵다. 특히 북쪽이 끊임없이 제기하는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쪽이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전반적인 한반도 정세와 연관시키면서 남북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잘못이다. 남북 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 사업이 좌초한다면 남북 모두 두고두고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북쪽이 남쪽 사람들의 개성공단 방문을 통제한 지 보름 이상 지났다. 지금도 200명에 가까운 남쪽 사람이 개성공단에 머물고 있다. 북쪽이 이들에 대한 생활물자 수송까지 막는 것은 반인도적이기까지 하다. 북쪽은 개성공단 가동을 정상화해야 마땅하다.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와 6자회담 등이 순조롭게 재개될 수 있도록 미국과 중국 등을 상대로 적극적인 외교를 펴나가야 한다. 남북 대화 재개 및 관계 개선 노력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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