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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 정치개입 은폐했던 경찰도 수사해야 |
경찰이 그제 국가정보원의 정치댓글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면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고 정작 대선에 불법 개입한 혐의에는 면죄부를 줘, 부실·축소 수사라는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경찰의 문제점은 법률 적용을 잘못한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경찰 고위 간부들이 고의적으로 사건의 성격을 뒤틀거나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한 게 더 본질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12월16일 박근혜·문재인 두 대선 후보의 방송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서울지방경찰청이 ‘무혐의’ 취지로 중간 수사 결과를 기습 발표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서울청은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29)씨의 컴퓨터 분석 작업을 16일 밤 9시15분에 끝낸 뒤, 1시간여 만인 밤 10시30분에 ‘분석결과 보고서’를 수서경찰서에 보냈다고 한다. 이어 수서경찰서는 보고서를 받은 지 30분 만에 언론에 공표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치르듯 속전속결로 움직인 것이다.
또 수서경찰서가 78개의 키워드를 가지고 김씨의 컴퓨터를 분석하도록 서울청에 의뢰했으나 서울청이 숫자를 줄여달라고 요구해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4개의 키워드만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서울청은 사흘도 지나지 않아 ‘댓글 흔적이 없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수사 책임자였던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78개 키워드로는 그렇게 빨리 중간 수사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고 말했다. 수서경찰서 수사팀은 속았다는 느낌에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핵심은 김용판 당시 서울청장이다. 김 전 청장은 “무혐의 수사 결과 발표는 내가 주로 판단했다”고 언론에 당당히 밝힌 적이 있다. 경찰 수사 결과를 놓고 보면, 그의 이런 행동은 판단 착오 수준을 넘어서 ‘범죄 행위’에 해당한다. 범인을 은닉하고 증거를 인멸하면서 수사를 방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전 청장은 지난달 29일 경찰복을 벗고 명예퇴직을 했으나 앞으로 “영전을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청와대 경호실 차장 하마평에도 올라 있다고 한다.
김 전 청장은 현재 공직선거법 위반, 공무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민주통합당에 의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돼 형사3부에 사건이 배당돼 있다. 검찰은 그제 국정원 정치 개입 사건을 다룰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이 수사팀이 국정원뿐만 아니라 김 전 서울청장과 경찰 수뇌부의 조직적 은폐 의혹까지 함께 수사해야 한다. 그것은 권력기관의 정치개입 재발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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