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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자력협정, 재처리·농축 집착에서 벗어나야 |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협상을 2년 이상 진행해온 우리 정부와 미국이 내년으로 예정된 협정 만기를 2년 연장하되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어제 발표했다. 핵심 쟁점에 대한 두 나라의 견해차가 크다는 뜻이다. 이 사안이 새달 초순 한-미 정상회담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두 나라의 처지와 견해를 따져보면 협상 난항은 오히려 당연하다. 정부는 40년 된 기존 협정이 현실과 맞지 않으므로, 우리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도록 미국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전 23기를 가동하는 세계 5위 원자력 생산국으로서, 자체 농축을 통해 핵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재처리를 통해 핵폐기물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미국이 핵 비확산 정책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농축·재처리에 반대하는 데 대해, 한-미 동맹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우리를 북한과 같은 등급으로 보느냐는 반발도 가능하다.
하지만 미국의 우려도 근거를 갖는다. 핵 비확산은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에 농축과 재처리를 허용하면 북한·이란 등의 핵 문제는 더 나빠질 게 분명하다. 미국이 비슷한 협상을 진행중인 베트남·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에 미칠 영향도 적잖다. 지난해 우리나라 미사일의 사거리가 연장된 데 이어 원자력협정까지 핵분열 물질 생산이 가능한 내용으로 바뀐다면, 우리나라가 핵의 전력화를 꾀하고 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일부 정치인과 보수세력이 핵무장론을 공공연하게 주장해 국제사회의 경계심이 높아진 상태다.
한마디로 지금 정부 입장대로 협정이 개정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좀더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게 현명하다. 이번 협상에서 우리나라의 원전 수출을 원활하게 하는 방향으로 협정을 바꾸는 데는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직접 농축·재처리를 하지 않더라도 핵연료를 차질 없이 공급받고 사용후 핵연료를 더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정부는 농축·재처리 문제를 공론화해 국민의 뜻을 들어보는 절차도 거친 적이 없다.
핵폐기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값싸고 깨끗한 에너지’라는 ‘원자력 신화’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당장 원자력 이용을 중단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에너지 정책도 원전 축소 쪽으로 가야 한다. 원자력협정 또한 이런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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