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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그렇게 두려운가 |
국가보훈처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부를 공식 추모곡 공모를 위해 4800만원의 예산을 편성했다고 지난주 밝혔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행사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를 생각하면 추모곡을 새로 만들기보다 이 노래를 공식 추모곡으로 지정하는 게 더 낫다. 아까운 예산 낭비하지 말고 5·18 기념식 추모곡 공모 절차를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 퇴출에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정부 모두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전두환의 폭력적인 정권 탈취 시도에 맞서 투쟁한 5·18 민주화운동에 마음이 불편하고, 5·18 민중항쟁의 의미가 오롯이 담겨 있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귀에 거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5·18은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역사적 평가가 이미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가 진정 민주정부라면 이를 부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국가 기념일인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의 제정 취지에 비춰 봐도 이는 적절치 않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에서 전두환 등 5·18 주범들에 대한 반란 및 내란죄를 확정한 뒤 정부는 곧바로 5월18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다. 5·18 민중항쟁 과정에서 숨져간 민주열사들을 추모하고, 그 숭고한 뜻을 되살려 민주주의 완성에 매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이를 마뜩잖아하고 사실상 5·18의 주제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 역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1982년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6·10 항쟁 등 민주화운동의 현장마다 어김없이 불려왔다. 민주주의를 애타게 갈망하는 외침이었고, 민주화운동에 온몸을 바치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민중가요를 부르고 대정부 투쟁을 고취시키는 것은 헌법의 기본질서를 훼손하는 행위’라며 공공기관의 민중가요 의례를 금지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한다면 스스로 민주화 투쟁의 대상인 반민주정부임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
5·18 관련 단체와 시민들은 정부의 5·18 공식 추모곡 공모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30여년 동안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행사 주제곡처럼 불러왔기에 너무나 당연한 반응이다. 정부는 5·18 당사자들조차 반대하는 추모곡 공모를 당장 중단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당당하게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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