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신뢰프로세스’만으로는 남북대화 어렵다 |
지난 3일 개성공단 잔류 인원 7명이 모두 돌아왔다. 이로써 2003년 6월 첫삽을 뜬 개성공단에는 9년여 만에 우리 쪽 인원이 한 명도 없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남북관계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처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제 우리는 남북대화가 완전히 단절된 환경에서 대화를 새로 시작해야 하는 한층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개성공단이 이처럼 폐쇄 위기에 몰린 일차적 책임은 북한 쪽에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올해 들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데 이어 일방적으로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지난달 9일에는 북한 근로자 5만여명을 철수시켰다. 북쪽은 한-미 군사훈련과 ‘최고 존엄 모독’을 그 이유로 삼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억지 주장일 뿐이다. 어제도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해선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와 군사적 도발을 먼저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이 이 지경에 이른 데는 우리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북정책 기조로 내세우며 북쪽의 변화를 촉구했다. 항상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고는 했지만 북쪽의 변화를 전제로 한 대화여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달 25일 북쪽에 실무협상을 제안하면서 하루 시한을 두고 응답하라고 압박한 것은 현 상태에서는 대화할 생각이 더 이상 없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상황이 급작스럽게 악화한 데는 우리 쪽의 이런 성급함도 한몫했다.
앞으로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완제품 반환 등을 위한 실무협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실무 차원의 협상으로 개성공단 정상화를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남북 모두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대폭적인 양보 없이는 개성공단 재가동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개성공단뿐 아니라 남북관계 전반이 꽁꽁 얼어붙게 됐다는 점이다. 남북관계가 2000년 6·15 정상회담 이전의 대치 상황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제 남북대화는 새로운 차원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개성공단 실무협상이나 남북 간에 신뢰를 하나하나 쌓아가며 협력 단계를 높여간다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는 남북대화 재개가 사실상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현 국면을 일괄적으로 타결할 수 있는 고위당국 간 회담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회담 의제도 개성공단 정상화 차원을 넘어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번주에 이뤄질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두 나라 정상의 통 큰 결단이 있기를 기대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