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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끄러운 갑을 문화, 경제민주화로 청산해야 |
식품업체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부당행위를 강요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30대로 밝혀진 남양유업 영업사원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점주에게 고압적 자세로 반말과 욕설을 퍼붓고 물량 떠넘기기까지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을 문화의 단면이 드러난 것이다. 우월적 위치에 있는 갑이 자신보다 약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본사 영업직원의 고압적 행태는 우연히 불거진 일탈행위가 아니라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대리점주 등으로 구성된 남양유업 대리점 피해자협의회는 본사가 제품을 강매하고 명절 때마다 떡값과 위로금을 요구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대리점주들은 본사 횡포가 칼만 안 들었지 강도가 따로 없다고 말한다. 밀어내기와 폭언이 반복되다 보니 공황장애까지 얻게 됐다고 하소연하는 점주도 있다.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비단 남양유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농심 등 다른 식품업체들도 강제 판매 등으로 문제를 심심찮게 일으켰으며, 통신사도 대리점을 경유해 일선 판매점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외에 인터넷, 집전화 계약 유치 목표를 부과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페널티를 물리다 적발됐다. 본사가 기존 편의점 인근에 마구 점포를 허가하고 계약해지 때 과도한 위약금을 내도록 하는 횡포를 부린 탓에 편의점주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기도 했다. 본사가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부과하고 끼워팔기를 강요하는 행태는 제과·치킨·화장품·타이어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갑과 을은 원래 양자가 합의한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대등한 주체다. 그럼에도 과도한 승자독식 문화가 전근대적인 계층의식과 결합된 탓에 뿌리깊은 불평등이 자리잡고 있다. 직장인의 80%가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73%가 갑이 주는 스트레스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다. 이런 갑의 횡포를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사회 분위기가 지난 선거 때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밀어올린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부당하게 지위를 이용하거나 거래 상대방을 구속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부당 횡포를 고발해도 업체에 과태료 몇 푼만 부과하고 끝내버리는 솜방망이 처벌이 반복되다 보니 갑의 횡포가 근절되지 않는다고 한다. 불법행위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큰 불이익을 받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더욱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 또 불법행위를 할 경우 경영자 구속 등 강력한 처벌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정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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