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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공식 기념노래로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만큼 ‘5월 광주 정신’을 오롯이 표현하고 있는 노래도 없다. 군사독재에 맞서 기어코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비장한 결의가 담긴 이 노래는 독재정권 시절 광주 민중항쟁과 민주화운동을 연결해주는 다리였고 구심체였다. 1982년 만들어진 이후 광주뿐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의 민주화 현장에서 아직도 즐겨 불리고 있는 건 그 노래 속에 민주화를 위해 흘린 민중의 피와 땀이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보훈처가 5·18 기념행사에서 이 노래 지우기 작업에 본격 나섰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2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5·18 기념행사에서 부를 별도의 공식 기념노래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5·18 행사가 광주지역만의 행사가 아니라 정부 행사이고, 모든 정부의 공식 기념행사에는 기념노래가 있어야 하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선 많은 이견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광주·전남을 비롯한 전국의 민주시민이 보훈처의 이런 방침에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훈처의 공식 기념노래 제정 방침이 이 노래를 불온시한 2009년 이명박 정권 때의 인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5·18 기념식에 참석한 뒤 임기 내내 참석을 외면했다. 그리고 다음해부터 끊임없이 이 노래와 기념행사의 분리를 꾀했다. 2009년엔 이 노래 제창이 기념행사가 아닌 식전행사로 밀렸고, 2010년엔 이에 대한 항의로 5·18 체들이 행사 참여를 거부했다. 2011년과 2012년에는 참석자 제창이 아닌 합창단의 합창으로 변경됐다. 이런 역사가 있는데 어찌 박근혜 정부의 새로운 기념노래 제정 방침을 곱게 봐줄 수 있겠는가.
박근혜 정부가 정말 공식 기념노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돈을 들여 공모를 하는 수고를 할 게 아니라 지역사회의 요구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노래로 지정하면 될 일이다. 프랑스혁명 때 만들어진 ‘라 마르세예즈’는 당당하게 프랑스 국가로 불리고 있다.
이 노래를 두고 이견이 많다고 하는데, 이명박 정부 전까지는 한 번도 5·18 기념식에서 그 노래를 부르는 데 이견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바 없다. 정부가 30년 이상 불러온 노래를 몰아내고 새 노래를 만들겠다는 건 광주 민중항쟁과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정이고 도전이다. 정부는 당장 분란만 키울 새 노래 제정 방침을 철회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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