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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실패한 대북정책 고수한 한·미 정상 |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어제 새벽(한국시각) 정상회담을 통해 밝힌 대북 정책 기조는 실망스럽다. 이전 정부의 실패한 정책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법 도출은 물론이고 국면 전환의 동력도 생기기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회담에서 자신의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몇 해 동안 내가 해온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1기 정부는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방관 정책을 펴왔다. 북한이 바뀌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는 이 정책은 이명박 정부의 선비핵화론과 맞물려 한반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 정책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비슷하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말은 이전 정책에 대한 합리화와 함께 앞으로도 전면에 나서지 않고 상황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데는 박 대통령의 책임이 작지 않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중순 한·중·일 순방 과정에서 대북 대화 의지를 강조한 바 있다. 핵·미사일 문제 등을 근본적으로 풀려면 기존 정책으로는 안 된다는 반성에서 나온 시도다. 이런 움직임을 확산시켜 미국이 대북 대화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하도록 할 수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새 구상을 갖고 미국 쪽을 설득하기는커녕 기존 동력조차 떨어뜨리고 있다. 박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잘못이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관련해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열어놓겠다’는 원칙적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어떻게 신뢰 수준을 높이고 대화의 문을 열지에 대한 내용이 채워지지 않으면 선비핵화론과 다를 바가 없다. 북한 문제는 미국인들의 일상적 관심사가 아니며, 한반도 상황이 더 나빠지더라도 미국이 직접 피해를 볼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미국 강경파는 동북아 지역에서 일정한 긴장이 있어야 대외 정책을 펴기가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가 창의력을 발휘해 노력하지 않으면 한반도 관련 사안에 대한 해법은 나오기 어렵다.
한·미 두 나라는 이미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대북 정책을 지속하려는 태도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압박만으로 북한 관련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의 협력도 한·미의 적극적 노력이 선행돼야 효과가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한 논의를 더는 피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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