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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5.10 19:04 수정 : 2013.10.02 16:20

청와대 대변인은 단순히 ‘대통령의 입’이 아니다. 그는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얼굴이고 분신이다. 이런 내용의 칼럼을 썼던 인물은 다름 아닌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다. 그런데 그 자신이 대한민국 정부와 대통령 얼굴에 지울 수 없는 먹칠을 하고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사관 인턴 여성을 성추행했다가 한국으로 도망치는 엽기적인 사건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은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며 하루아침에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박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 성과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피의자’ 신분이 된 윤창중씨는 언론계에 있을 때부터 막말과 망언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런데 그는 입만 더러운 것이 아니라 행동도 추잡하기 짝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세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기용한 뒤 더욱 기고만장해졌고, 권력자의 사랑에 도취해 날이 갈수록 안하무인이 됐다. 이번 사건의 원죄는 결국 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 셈이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다. 우선 정확한 진상규명이다. 여기에는 성추행 사건의 전말뿐 아니라 그의 도피 과정에 대한 명백한 진상규명도 포함돼야 한다. 그가 서둘러 짐을 싸서 국내로 돌아온 것은 청와대의 종용 내지 방조가 있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끝나지 않았는데 대변인이 아무런 상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귀국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외교적 말썽을 차단하기 위해 청와대 쪽이 서둘러 빼돌렸다고 보는 편이 오히려 합리적인 추론이다.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를 도피 귀국시켰는지에 대한 정확한 진상규명과 책임을 묻는 절차가 뒤따라야 한다.

윤씨를 이른 시일 안에 미국으로 다시 돌려보내 미국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게 하는 것도 불가피하다. 그것이 가장 진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윤씨를 상대로 일차 조사를 벌였다고 하지만 벌써 피해 여성의 주장과 확연히 엇갈린다. 피해자와의 대질신문 등이 필요한 상황에서 한국 수사기관의 조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 검찰이나 경찰이 수사 결과를 내놓아도 국민이 믿기 어렵다. 설사 미국이 한국 정부의 체면을 고려해 피의자의 신병 인도 요청을 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 쪽에서 먼저 윤씨를 보내 미국에서 수사를 받게 하는 것이 옳다.

이번 사건은 박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여론에 귀 막고 독단과 고집을 부려놓고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오만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윤씨 사건이 인사 실패 후폭풍의 끝이 아니라 서막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사 문제 등에 대한 박 대통령 인식의 일대 전환이 없는 한 제2, 제3의 윤창중 사건은 언제든지 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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