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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부적절한 통상임금 논란, 사법부 판단 따라야 |
박근혜 대통령이 8일 미국 워싱턴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꼭 풀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노사 간의 뜨거운 쟁점이었던 통상임금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다.
대법원은 1996년 이후 비록 이름이 뭐라고 붙었든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임금이라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한결같이 유지해왔다. 근속가산금, 교통보조비, 위생수당, 위험수당, 기말수당, 정근수당, 체력단련비, 명절휴가비, 효도제례비, 소통장려금, 출퇴근보조여비 등 수많은 수당이 다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 2012년 3월 판례도 그 연장선에서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시했다. 노동자들이 받아야 할 임금을 못 받았으니 사용자들은 제대로 지급하라는 것이다. 이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지엠 회장의 불만에 맞장구를 친 것은, 사법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잘못은 오히려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에 있다. 대통령령인 ‘훈령·예규 등의 발령 및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정부가 고시하는 각종 훈령·예규는 변화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3년마다 재검토하고 이를 다시 고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노동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은 1988년 제정된 이후 네 차례 개정되었는데도 법원의 판례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지난해 9월 지침을 재고시하면서 6개월 전 대법원 판례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에 통상임금을 둘러싼 소송전이 본격적으로 불붙은 것이다. 법률 해석의 최종 기관인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노사 갈등을 조기에 종식하는 것인데도, 이를 게을리한 건 노동부가 기업들 눈치 보기에 바빴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다루는 청와대의 태도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조원동 경제수석은 박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 사석에서 “청와대가 통상임금 문제를 고민하던 중 마침 지엠의 투자 문제가 생겼다. 이참에 공론화해 풀어볼 방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80억달러의 투자가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기업들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꼼수로 읽힌다.
정부와 기업들은 사법부의 판결을 흔들려 하지 말고, 통상임금 소송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임금체계를 바꾸는 계기로 삼는 편이 훨씬 나아 보인다. 기본급은 낮고 각종 보너스만 포도송이처럼 달려 있는 기형적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그 길만이 복잡한 임금체계로 인해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불필요한 분쟁과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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