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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윤창중 추태, 결국 박 대통령의 문제다 |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추태도 문제이지만, 이 사건을 대하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의 자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입 노릇을 하는 대변인이 정상회담 지원을 위해 고용된 인턴을 ‘성추행’하고 도피한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사건의 정확한 진상을 밝히려는 노력보다 박 대통령에게 책임이 미치는 것만 막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청와대는 이 나라의 국체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입헌군주국이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 비서관은 박 대통령의 방미를 수행하고 귀국한 10일 밤 자신의 이름으로 낸 사과문을 통해 “국민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미리 줄행랑쳤던 윤 전 대변인도 다음날 사건 해명 기자회견을 하면서 “먼저, 제가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과 박근혜 대통령께 거듭 용서를 빌며 머리 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국민을 상대로 사과 기자회견을 하면서도 시선은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국민은 대통령에게만 사과하기 멋쩍으니까 끼워넣은 장식물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대통령을 대신해 국민과 소통을 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조차 이러니 청와대의 문화가 얼마나 봉건적이고 권위주의적인지 짐작할 만하다.
어제는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이 나와 사과를 했다. 비난 여론을 감지한 탓인지, 박 대통령에 대한 사과와 용서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해 책임을 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나올 자리에 그가 나와 아무리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겠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박 대통령의 인사 실패 책임에 대해 ‘단 네 줄, 17초짜리’ 사과에 이어 ‘사과 전담 실장’이란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번 사건의 궁극적 책임은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윤씨를 인수위 대변인에 이어 청와대 대변인에 발탁한 박 대통령에게 있다. 임명 과정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건 윤씨가 사고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과정과 박 대통령의 인지 시점이다. 윤씨는 이 수석의 지시로 귀국했다는 것이고, 이 수석은 윤씨 개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이 이 사건을 인지한 것도 윤씨가 귀국한 이후라고 설명했다. 미 국무부가 주미 한국대사관을 통해 제기해온 ‘중대한 문제’를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하지도 않고 홍보수석 독단으로 처리했다는 얘기다. 만약 그렇다면 홍보수석이 간이 부었거나 청와대 조직이 엉망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 대통령에게 보고하고도 그런 식으로 둘러댔다면 대국민 사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비서진 뒤에 숨어 있지만 말고 국민 앞으로 나와 당당하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추행과 관련한 진실공방은 사법당국에 맡기더라도 윤씨의 도피가 청와대의 방조와 지원 속에 이뤄진 것인지, 자신이 이 사건을 언제 인지했는지는 직접 밝히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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