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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대통령의 어정쩡한 사과로 끝낼 일 아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번 방미 일정 말미에 공직자로서 있어서는 안 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해 국민 여러분께 큰 실망을 끼쳐 드린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비록 회의 발언 형식을 빌렸지만 국민에게 직접 사과를 한 것은 취임 뒤 처음 있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우선 형식적으로 미흡하다. 국격을 크게 훼손한 전대미문의 성추문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면 박 대통령이 국민과 재외동포 앞에 직접 머리 숙여 사과했어야 한다. 대국민 담화든 기자회견이든 정중히 예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참모의 일인데 굳이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설 필요가 있겠느냐는 잘못된 인식이 이런 어정쩡한 사과로 나타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사안의 본질과도 거리가 멀다. 이번 사건은 일차적으로 박 대통령의 인사 잘못에서 비롯됐다. 누가 보아도 부적격자임이 분명한 인물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청와대 대변인으로 연이어 발탁한 ‘불통 인사’ ‘오기 인사’가 사건의 근본 원인이다. 이번 기회에 박 대통령은 자신의 인사 잘못에 대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죄했어야 한다. 그간 인사의 문제점을 면밀히 재점검하고 다시는 이런 수준 미달 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원칙도 천명했어야 한다.
청와대가 사건 와중에 자충수를 두어가며 파장을 키운 데는 박 대통령의 상명하복식 국정운영 스타일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청와대 홍보수석과 비서실장의 사과에 이어 대통령이 세번째로 엉거주춤한 사과를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지금 청와대 참모 중에는 박 대통령에게 국민 앞에 직접 나서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직언할 사람이 없는 듯하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이 내가 직접 국민 앞에 나서겠다고 단안을 내리는 모습도 보기 어렵다. 대통령은 군림하고 참모들은 그저 대통령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이런 상태에선 역동적인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고 발생 시 위기대응 매뉴얼이나 다듬고, 공직 기강을 확립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정도로 사건을 매듭지으려 한다면 곤란하다. 홍보수석 한 사람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광범위한 책임자 문책은 당연한 순서다. 근본적으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사와 국정운영에서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 청와대 팀워크가 엉망이라면 인적 쇄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때그때 위기만 모면하려는 땜질식 처방으로는 비슷한 사고가 재발하지 말란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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