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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의 ‘박원순 문건’ 전모 낱낱이 밝혀야 |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깎아내리기 위한 방안을 담은 국가정보원 내부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이 공개됐다. ‘서울시장의 좌편향 시정 운영 실태 및 대응 방향’이란 제목 아래 2011년 11월24일 작성된 것으로 표기된 이 문건에는 국정원 내 배포선을 뜻하는 고유 표시까지 적혀 있다고 한다. 국정원 쪽이 “문서고와 전산기록에서 찾을 수 없어 국정원에서 작성하지 않은 문건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혀, 국정원 작성 문건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문건 작성 형식이나 글씨체, 약물 등이 국정원 문건과 유사하고 문건 내용대로 실행된 정황도 적지 않아 국정원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수사를 통해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문건은 한마디로 노골적인 정치개입 방안을 담고 있다. 박 시장이 취임 이후 “세금 급식 확대, 시립대 등록금 대폭 인하 등 좌편향·독선적 시정”을 편다며 감사원 감사나 여당 소속 시의원 또는 우익 단체 등을 동원해 제압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문건에서 제안한 것과 유사한 행위들이 며칠 뒤 실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나, 치밀한 각본 아래 정치공작이 실행됐을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대한 재정적 견제 방안을 강구한다는 문건 내용처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서울시의 예산 지원 요청에도 불가 방침을 고수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 방해 시위대를 상대로 한 서울시의 손해배상금 징수 포기 검토 방침에 대해 “건전 단체들의 항의방문·시위로 방침 철회를 압박”하겠다는 내용의 문건이 작성된 지 나흘 만에 실제 8개 보수단체가 박 시장 규탄 시위를 시청 앞에서 열기도 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세종시나 4대강 사업 등 국정현안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지시하고, 심리전 강화를 위해 정치댓글을 다는 심리정보국을 운영한 사실 등을 고려하면, “원 전 원장이 신아무개 국익전략실장에게 지시해 작성한 보고서라는 제보 편지를 받았다”는 진선미 민주당 의원의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문건이 공개된 이상 어떤 형태로든 문건의 작성 주체와 실행 여부 등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국정원 스스로 진상을 공개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이 이 문제까지 함께 수사하는 게 현실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하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소환조사하는 등 적극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으니 그 연장선에서 박 시장 겨냥 정치공작 여부까지 조사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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