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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조광수 감독의 동성결혼 발표를 보며 |
김조광수 영화감독이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어 동성결혼식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유명 인사가 동성결혼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처음이다. 김조 감독은 2006년 커밍아웃한 뒤 성적 소수자 운동을 꾸준히 벌여왔다. 김조 감독의 발표를 계기로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금지 문제가 폭넓게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동성결혼은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민법이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조 감독은 결혼 뒤 혼인신고가 반려되면 헌법소원을 할 태세여서 본격적인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을 예고해 놓고 있다.
성적 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오랜 서구와 달리 우리나라의 성적 소수자 인권 현실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 지난달 국회에선 야당 의원들이 동성애자 등에 대한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결국 철회했다. 동성애를 인정하자는 것이냐는 일부 보수 기독교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차별금지법은 종교, 사상 및 정치적 지향, 성적 지향 등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쉽게 말해 동성애자라고 해서 신입사원 선발에서 탈락하거나 해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군형법 제92조 6항은 동성애 처벌법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조항은 군인 사이의 동성애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국제적인 동성애 비범죄화 추세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동성애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차별이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선 동성결혼의 문제는 사치스러울 정도다. 서구에서도 동성결혼 합법화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 프랑스에선 지난 3월 거센 논란 끝에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여태껏 14개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고, 미국 등 3개국은 일부 자치주별로 합법화를 인정하고 있다.
동성애, 성적 소수자 문제는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가족, 내 친지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동성애에 대한 차별 때문에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고 친구·자매라면 문제는 다르다. 마침 오늘(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1990년 동성애가 질병이 아님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라고 한다. 청소년 등에게 특정한 성적 지향을 권장하거나 부추길 이유는 없다. 다만, 어찌할 수 없는 성적 지향을 이유로 사회적 삶을 영위하는 데서 차별받고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곤란하다. 김조 감독의 발표를 계기로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금지에서부터 결혼 합법화에 이르기까지 성적 소수자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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