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밀양 송전탑, 주민과 더 협의해 합의점 찾아라 |
한국전력이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된 밀양 송전탑 공사를 재개하기로 해 충돌이 우려되고 있다. 한전은 주민들과 협의를 충분히 했고 조속히 공사를 재개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대책위는 한전이 제시한 갈등 해소 방안을 수용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송전탑 예정지 일부 진입로를 주민들이 점거하고 있어 공사를 재개하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상황이다. 공사를 강행하지 않겠다던 한전이 사정이 급하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밀양 송전탑 공사를 둘러싼 갈등은 햇수로 8년째 계속되고 있는 해묵은 과제다. 한전은 애초 2010년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분신자살까지 초래한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공정률 73% 상태에서 지난해 공사를 중단했다. 당시 ‘선 협의, 후 공사’를 선언한 한전이 돌연 공사 재개로 돌아선 것은 전력 연결의 시급성 때문이라고 한다. 오는 12월 말 상업운전이 예정된 신고리 3호기 원전을 정상 운행하고 전력 수요에 맞는 송전선로를 갖추려면 공사를 더 미룰 수 없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자연경관 훼손과 전자파 피해, 땅값 하락 등을 이유로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한전의 무리한 공사 강행과 용역을 동원한 폭력 행사, 주민들 간의 분열 조장이 한전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그럼에도 주민대책위는 한전과 꾸준히 협의를 진행해왔지만 한전은 전향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주민대책위가 요구한 것은 한전과 대책위가 추천한 전문가들로 협의체를 꾸려 송전선로 지하매설을 포함한 몇몇 대안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한전은 선을 긋고 송전탑이 들어서는 부지에 대한 보상을 늘리겠다는 현실적인 입장만 내세웠다. 주민들의 반대와 대책위의 제안을 귀담아듣지 않고 공사 강행을 염두에 두었다는 게 이번에 드러난 셈이다. 한전은 송전선 지중화는 기술적으로 어렵고 공사 기간이나 비용이 훨씬 늘어난다고 하나,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적 가능성은 물론 경제적 합리성도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또 신고리 3호기의 경우엔 기존 송전선로의 용량을 키우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한전이 인정한 바 있다고 한다.
정부와 한전의 갈등관리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민을 처음부터 참여시켜 사전에 갈등을 예방하고, 사후에도 이해관계자가 머리를 맞대는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애초부터 그런 인식이 부족했다. 송전탑 문제의 근원에는 공급 중심, 원거리 대량수송 중심의 전력정책이 있다. 대규모 원전 건설을 멈추고 에너지 효율을 높여야 유사한 갈등을 피할 수 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