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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빙산의 일각 드러난 역외 탈세 의혹 |
인터넷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어제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등에 페이퍼컴퍼니를 둔 한국인 245명을 확인했다고 밝히고 이수영 전 경총 회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동생인 조욱래 디에스디엘(DSDL) 회장의 명단을 공개했다. <뉴스타파>는 245명 가운데는 이들 이외에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재벌 총수와 총수 일가 등 유력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규모만으로도 충격적이다. 국제탐사언론인협회의 조세피난처 관련 첫 보도 당시 한국인은 70여명 정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뉴스타파>의 분석으로 훨씬 더 많은 수를 확인해낸 것이다.
물론 조세피난처에 계좌나 법인이 있다는 것만으로 탈세를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다국적 기업들이 절세라는 미명 아래 페이퍼컴퍼니를 운용하고 각국의 부호나 정치인들이 구린 돈을 빼돌리고 숨기는 데 조세피난처를 이용해왔다는 점에서 역외 탈세 의혹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탐사언론인협회의 보도 이후 몽골 국회 부의장이 사퇴하고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딸 집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세계적으로도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페이퍼컴퍼니의 자금 운용 규모는 아직 알려져지 않았다. 하지만 이수영 오시아이(OCI) 회장 부부의 경우 수십만달러의 자금을 운용한 사실을 시인했다고 하니 전체 규모는 미루어 짐작할 만하다. 국세청은 2011년부터 해외에 10억원 초과 금융자산을 둔 사람들로부터 자진신고를 받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버진아일랜드에서는 신고가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역외 탈세조사에서도 버진아일랜드를 경유한 탈세 사례가 수차례 적발된 적이 있으니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한다.
버진아일랜드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영국 시민단체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은 197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해외 조세피난처로 빼돌린 자산이 총 7790억달러로 중국(1억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개발도상국 가운데 3위다. 이는 2011년 기준 한국 국내총생산의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유럽 부자 기업들의 조세피난처 이용은 줄어든 반면 아시아 국가들의 자금이 대거 유입됐다고 한다. 국세청의 역외탈세 적발건수와 추징액 또한 2008년 30건, 1503억원에서 지난해 202건, 825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국세청은 이번 일을 계기로 역외 탈세 의혹 전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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