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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재철 체제 연장’ 확인한 문화방송 인사 |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문화방송>의 추락과 파행의 주역인 김재철 사장이 물러난 뒤 새로 선임된 김종국 사장이 그제 본부장급 인사를 했다. 겉으로는 김재철 사장 시절 손발 노릇을 했던 안광한 부사장과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을 교체해 물갈이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방송사의 핵심 자리인 제작과 보도 책임자는 김재철 사장 때 사람을 유임시켰다. 눈속임을 통한 김재철 체제의 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재철 체제의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권 편향, 비판 실종의 보도·제작이었다. 이 때문에 김 사장 재임 시절 문화방송의 신뢰도는 지상파 방송 3사 가운데 꼴찌로 전락했다. 공정성 회복을 외치는 노조원들을 해고·징계·부당전배로 탄압하면서 방송사 안의 화합도 산산조각이 났다. 누가 새로 사장이 돼도 방송의 공정성과 신뢰를 회복하고 내부 화합을 꾀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종국 신임 사장은 보름이 넘는 장고 끝에 한 인사에서 ‘김재철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줬다. 백종문 편성제작본부장과 권재홍 보도본부장을 유임시킴으로써 김재철 사장 때의 보도·제작 노선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백 편성제작본부장은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피디수첩> 작가 전원을 계약해지하고,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아나운서들의 업무 복귀를 허락하지 않는 등 김재철 사장 때 일어난 방송 파행의 주된 책임자로 지목받아온 인물이다. 지난해 8월 편성제작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0%가 넘는 비율로 불신임을 받은 게 단적인 예다. 권 보도본부장도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편향 보도를 주도해 방송의 신뢰를 추락시킨 책임자이다. 파업 기간에 노조원들에게 폭행당해 다쳤다는 허위보도를 해 노사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이번 인사 과정에서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이 보여준 부정적 행태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김종국 사장이 선임 이후 보름이 넘도록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은 일부 여당 추천 이사들의 ‘자기 사람 심기’ 압력이 극성을 부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노릇을 해야 할 이사들이 그 권한을 이용해 인사 청탁을 한다는 얘기인데,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야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방문진 이사를 포함해 공영방송의 경영진 선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정파성이 짙게 투영되는 구조로는 절대 ‘신뢰받는 공영방송’을 만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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