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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법무부가 망가뜨린 ‘김영란법’, 국회가 추진하라 |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까지 처벌하도록 한 이른바 ‘김영란법’이 좌초 위기에 처하자 민병두·이상민 등 민주당 의원들이 원안대로 의원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잘하는 일이다. 나아가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게 마땅하다.
애초 이 법은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전 국가권익위원장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란 이름으로 만들어 지난해 8월 입법예고한 뒤 의견수렴을 거쳐 국회에 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법무부의 반대로 시간을 끌다 최근 핵심 내용이 모두 빠진 정부안이 만들어져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법이 돼버렸다.
원안에는 공직자가 100만원 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약속받는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받은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하고,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금품 제공자도 같은 처벌을 받게 했다. 또 부정한 청탁에 따라 위법·부당하게 직무를 처리한 공직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런데 법무부가 지난해 11월 권익위에 의견서를 보내 “직무 관련성이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정당인 등과 달리 공직자만 강하게 처벌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논리다. 권익위는 처음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연고주의와 청탁 관행을 끊기 위해서는 “엄격한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맞섰으나 세 차례나 법안을 고친 끝에 결국 법무부 주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수정안은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한테서 돈을 받은 경우에만 처벌하고, 그 경우에도 받은 액수의 5배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선으로 대폭 후퇴했다. 이는 애초 스폰서로부터의 금품수수나 향응처럼 대가성 입증이 어려운 경우에도 금품수수 사실만으로 처벌하겠다는 법 취지를 정면으로 뒤엎는 것이다. 스폰서나 떡값·촌지 등의 악습을 심각한 부패로 보고 있는 국민들의 시각과도 엄청난 괴리가 있다. 정치인의 경우 뇌물죄 이외에 정치자금법으로도 단죄되는 것과 비교해도 법무부 주장은 터무니없다.
스폰서검사, 그랜저검사 등 부패사건이 터질 때는 자체 개혁 운운하며 엎드려 있던 검찰과 법무부가 모처럼의 개혁법안을 상식과 동떨어진 법논리와 궤변으로 무산시키려는 저의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원안대로 입법하지 않으려면 최근 확정한 정부안을 즉각 철회하고 차라리 의원입법에 맡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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