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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시간제 일자리, 이름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
박근혜 대통령이 그제 “시간제도 좋은 일자리”라며 확대 방안을 주문했다. 물론 시간제도 좋은 일자리일 수는 있다.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노동 형태도 다양화하는 만큼 시간제 일자리의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여성 인력 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시간제 일자리가 나와야 한다. 시간제 일자리는 애를 낳고 기르느라 직장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하는 여성들의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는 장시간 노동 문화를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으로 시간제 근로자는 153만2000명 정도다. 시간제를 상용직과 임시·일용직으로 나눠 살펴보면, 상용직은 10만4000명으로 6.8%에 불과하다. 나머지 93.2%의 임시·일용직은 임금이 상용직의 절반 수준이고, 4대 보험에 가입한 경우가 극히 적으며, 각종 수당과 휴가 등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한마디로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나쁜 일자리인 셈이다. 이런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혁방안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박 대통령이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편견이 있으니 이름을 바꾸자”고 하면 아무리 좋은 의도였다 하더라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시급한 건 ‘이름 공모’가 아니라,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구조적 틀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 나라에는 좋은 시간제 일자리가 많다. 네덜란드의 경우 전일제로 일하는 모든 근로자가 시간제로 근무 형태를 바꿀 수 있고, 그 반대도 요청할 수 있다. 임금이나 복지 혜택 등이 전일제와 거의 비슷하며 시간제 근로자의 70~80%가 정규직이라고 한다. 영국도 중앙공무원 가운데 고위관료의 7.4%, 중간간부 및 전문직의 17.2%가 시간제일 정도로 숙련직과 전문직까지 시간제 일자리가 퍼져 있다.
우리 정부도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시간제 일자리의 신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주는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로드맵을 새달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발표 내용에서 핵심은 안정성이다. 적게 일하는 만큼 임금이 적은 건 탓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용 안정성 측면에서 정규직과 차별은 받지 않아야 한다. 4대 보험 등 각종 복지 혜택에서도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로드맵을 준비하면서 경계해야 할 것은 ‘고용률 70%’라는 목표 달성이다. 숫자에만 얽매일 경우 또다시 질 낮은 비정규직만 만들어내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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