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05.29 18:56 수정 : 2013.05.29 18:56

육군사관학교 교내에서 대낮에 남자 생도가 여자 생도를 성폭행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번 육사 성폭행 사건은 두 가지 점에서 충격적이다.

우선, 성폭행이 외부가 아닌 교내에서 음주를 한 상태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축제 기간인 22일 오전 운동회를 마친 같은 과 생도 20여명이 전공 교수들과 함께 점심시간에 맥주와 소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신 상태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술기운을 이기지 못한 2학년 여생도가 생활관으로 옮겨지자, 이를 돌보겠다고 따라간 4학년 남자 생도가 이 생도를 자신의 숙소로 데려간 뒤 성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제보를 받은 일부 방송사가 육군과 육사 쪽에 사실 확인 요구를 할 때까지 사건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는 점이다. 군은 무려 사건 발생 이후 엿새 동안이나 이런 사실을 비밀에 부쳤다. 어느 것 하나 명예와 규율, 사명과 책임을 앞세우는 육사에 어울리지 않는 부끄러운 행동이다. 군은 발생부터 은폐까지 이번 사건의 전 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벌해야 한다.

육군은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어제에야 뒤늦게 보도자료를 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사관생도들에 대한 인성교육 및 관련 규정 교육을 강화하고 관련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처럼 대통령까지 나서 군대 내 성범죄의 근절을 외치지는 않더라도 종이 한 장으로 때우는 건 사안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다. 대책의 범위를 육사에만 한정하는 것도 표피적이다.

군은 이번 일을 단순한 우발적 일탈행위로 보고 싶겠지만 그런 식의 인식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군대 안의 성범죄가 가장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는 사관학교에서까지 발생할 정도로 만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경각심을 가져도 될까 말까다. 1989년 여군 병과가 해체되면서 7개 병과에 여군이 생기고, 97년 공군사관학교를 시작으로 모든 사관학교에 순차적으로 여생도의 입학이 허용되는 등 군은 이미 ‘남자들만의 세상’이 아니게 됐다. 군도 구조적으로 성범죄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이 사건 이전에도 육해공 모든 부대에서 술시중 강요에서부터 성폭행까지 여군을 상대로 한 여러 유형의 성범죄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하지만 군은 그때마다 빙산의 밑바닥을 들여다보고 대책을 세우려 하기보다는 빙산의 윗부분을 가리는 데만 힘을 쏟았다. 군은 군대 안의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구조적 노력 없이 이런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