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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사 딴죽 거는 법무장관, 배후에 청와대 있나 |
검찰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선거법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겠다는 의견을 보낸 지 2주일이 지나도록 법무부가 결론을 내놓지 않아 수사 일정이 지체되고 있다고 한다. 겉으로는 ‘법리 검토’를 이유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검찰 방침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게 검찰 쪽 얘기다.
이 바람에 선거법 재정신청 기간(시효만료 10일 전부터 가능)과 공소시효를 고려해 5월말 구속영장을 친 다음 10일간의 법정 추가수사를 거쳐 곧바로 기소하려던 검찰의 일정이 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구속 뒤 제대로 수사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법무부가 수사를 방해하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법무부의 이런 태도는 검찰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것으로, 만일 수사가 잘못되거나 지장을 받을 경우 황교안 장관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 검찰 관계자는 “여권의 압력이 상당한 것 같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여권이라면 청와대 아니면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대선 당시 선대위의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과 박선규 대변인이 경찰의 댓글사건 ‘무혐의’ 발표를 예고해 외압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댓글 사건에 대해 대선 때 “젊은 여성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밝힌 이래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뒤 검찰 수사와 언론보도를 통해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개입 사실이 드러나고 ‘반값등록금 허구성 전파’ 등 정치공작용 문건 작성자가 현재 청와대에 근무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는데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고 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사건에 선거법이 적용될 경우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당선됐다는 꼬리표를 달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선거법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선거제도와 의회정치를 뿌리째 뒤흔드는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일이다. 대통령 아니라 그 누구도 헌법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
여러 정황에 비춰 황 장관의 태도는 박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다고 보기 힘들다. 이런 식의 행태를 계속한다면 사건을 부당하게 처리한 책임이 황 장관뿐 아니라 박 대통령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황 장관은 모처럼 정치적 영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는 일선 검사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 아니라, 후배 검사들이 법대로 처리할 수 있도록 외압에 맞서는 방패 구실을 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짓을 즉각 중단하기 바란다.
[관련영상] 국기문란 국정원, 개혁될까? (한겨레캐스트#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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