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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정원·경찰의 대선 개입, 청와대는 할 말 없나 |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및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이 어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등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 전 원장은 2009년 2월 취임 직후부터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이나 시민단체, 노조를 ‘종북좌파’로 간주하고 이들 세력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노골적으로 각종 선거에 개입해온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김 전 청장 역시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김아무개씨 컴퓨터 분석 결과, 대선 후보 관련 게시글이 발견됐음에도 없는 것처럼 허위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강요한 사실이 영상 증거와 함께 낱낱이 밝혀졌다.
이처럼 명백하게 선거에 개입한 국기문란 행위가 드러났음에도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채 불구속 기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검찰이 정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역설적으로 웅변한다. 발표 내용을 뜯어보면 이번 기소로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없다.
원 전 원장은 총선 직전인 2012년 2월17일 부서장회의에서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 안 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며 대놓고 선거개입을 지시했다. 3차장 산하 심리전단에 있던 2개의 사이버팀을 총선·대선을 앞둔 2012년 2월 4개 팀 70여명으로 확대한 데서도 그 저의가 드러난다. 국정원은 애초 이들의 활동이 종북 대처 활동이라고 변명했으나, 북한·종북좌파 관련 게시글에 대한 찬반 클릭은 2.7%에 불과하고 대선이 임박한 기간엔 주로 선거 관련 글에 클릭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경찰이 대선 5일 전 국정원 여직원 김씨의 노트북에서 삭제된 문서파일을 복구해 ‘목 내놓고 금강산 가기는 싫다’며 문재인 후보 발언을 비난하는 내용 등 100쪽에 이르는 정치·선거 관련 댓글과 클릭 자료들을 확보해놓고도 거짓 발표로 민심을 호도한 것은 대선 결과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큰 심각한 범죄다. 당시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디지털증거분석실 폐회로티브이에 찍힌 분석관들의 대화 장면을 보면 김 전 청장이 대선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알 수 있다.
다음 아고라 등 상당수 포털에 작성한 글이 이미 삭제되고, 심리전단 활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이뤄진 것이 아니란 점에서 이번 수사 결과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검찰이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나름대로 적극적인 수사를 벌였으나 미흡한 대목도 남아 있다. 대선 직전 심야에 경찰이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강행하게 된 경위,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보고 여부가 드러나지 않았다. ‘박원순 문건’ 수사도 필요하다. 이밖에 불구속 결정 과정에 황교안 법무장관과 곽상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는지 등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이들의 국기문란 행위를 결과적으로 옹호하고 문제를 제기한 민주당을 비난했던 박근혜 대통령도 이제는 분명한 해명과 사과를 해야 한다.
[관련영상] [한겨레 캐스트 #114]증거인멸·도피시도 원세훈, 불구속 타당한가? [한겨레 캐스트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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