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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의 대미 비핵화회담 제의와 남북관계 |
북한이 어제 국방위원회 대변인의 중대담화를 통해 미국에 고위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다. 미국이 북한의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성사된다면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과 미국의 식량지원에 합의했던 2012년 ‘2·29 합의’ 이후 북-미의 첫 공식 대좌가 된다.
북한은 북-미 고위당국자 회담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의 완화 문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문제, 미국이 내놓은 ‘핵 없는 세계 건설’ 문제를 포함해 양쪽이 원하는 여러 가지 문제를 폭넓고 진지하게 협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회담 장소와 시일은 미국이 편리한 대로 정하라고 했다.
북한은 지난달 최룡해 특사의 중국 방문 때 ‘6자회담 등 다양한 방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언급한 뒤 지난 6일 파격적인 남북 당국자 회담을 제의했다. 이번 북-미 회담 제의도 그런 정책 전환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북한의 핵보유국 불인정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노력에 합의한 7~8일의 미-중 정상회담과 27일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 제안을 하면서 ‘조선반도의 비핵화’가 우리 군대와 인민의 변함없는 의지이고 결심이라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비핵화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훈이라는 말까지 더했다. 비록 ‘북핵 폐기만을 위한 비핵화가 아니다’ ‘핵보유국으로서의 당당한 지위’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지난해 초 핵보유국을 헌법에 명기하고 3월 핵-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밝힌 뒤 이런 말을 사용한 건 처음이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의 이번 제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점이다. 미국은 6자회담 등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재개하기 위해선 북한의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혀왔다. 북한의 제안은 대화를 향한 ‘진정성’은 담고 있는 듯하지만 선제적인 비핵화 조처에 대해선 눈을 감고 있는 듯하다. 벌써부터 미국이 받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한반도의 긴장 해소를 위해선 미국 정부가 북한의 제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남북대화가 격 문제로 좌초한 마당에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해볼 소중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이참에 자존심 싸움에서 벗어나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대화 분위기를 적극 선도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 개선 없이는 ‘한국 없는 한반도 문제의 해결 구조’만 강화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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