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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최악의 사주가 초래한 한국일보 사태 |
한국일보가 21일까지 닷새째 ‘신문이 아닌 신문’을 찍어내고 있다. 신문의 반은 통신 기사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10여명의 간부·기자들이 ‘대량생산’한 조잡한 기사로 메우고 있다. 국민을 대신해 표현의 자유를 실현한다는 언론 본연의 소명을 포기하고, 독자를 우롱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신문의 논설위원들은 18일 ‘한국일보 사태에 대한 논설위원들의 입장’이란 제목의 성명을 내어, 이렇게 발행하고 있는 신문을 “도저히 신문으로 부를 수 없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쓰레기 종이뭉치”라고 규정했다. 편집국을 봉쇄한 채 사주의 뜻에 따르는 몇몇 간부·기자들만을 동원해 찍어내는 인쇄물을 신문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선언이다. 이에 대해 많은 언론인과 독자들도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하지만 장재구 회장을 필두로 한 회사 쪽은 전혀 반성의 기미조차 없다. 다음날 지면을 통해 이런 조처가 ‘그간 전 편집국 간부와 노조에 의해 파행 제작돼온 신문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더 나아가 집필을 거부한 주필을 논설위원으로 강등 발령내고 퇴직 논설위원을 새 주필로 임명했다. 언론을 포기하더라도 기득권만은 놓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일보 사태는 지난달 초 한국일보 노조가 사주인 장 회장을 200억원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장 회장이 보복 인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그 배경에는 창업주인 장기영씨가 숨진 뒤 2세들이 경영권 다툼과 배임과 횡령 등을 통한 축재를 일삼으며 경영을 방만하게 해온 적폐가 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책임자는 장 회장이다. 그는 이번 사태를 통해 배임 혐의는 둘째 치더라도 언론사 사주로서 전혀 소양이나 자격이 없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언론사주가 그처럼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 엄중함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적 이익을 실현하는 영리기업으로만 생각하면, 언론사는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한다.
한국일보 사태는 단순히 한국일보 사주와 사원 간에 신문 발행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 아니라, 최악의 사주로부터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지키는 싸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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