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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버냉키 충격’ 이후가 더 문제 |
정부는 23일 추경호 기획재정부 1차관 주재로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 발언 이후 불안해진 국내 금융시장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시장에 충격을 줄 만한 특별한 대책 발표는 없었다. 은행별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환율이 급변동하면 적극적인 시장안정 조처에 나서겠다는 등 통상적인 수준의 언급에 그쳤다.
정부의 이런 차분한 대응은 일리가 있다. 경상수지나 외환 보유액, 재정 건전성 등 우리의 거시경제 지표는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외부의 급격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판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버냉키 발언 이후 출렁였던 주가와 환율도 이번주부터는 안정세를 찾아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냉정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시장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도 지나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풀었던 정책을 거둬들인다는 것은 경기가 살아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기적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에게도 득이 될 수 있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가 단기적으로는 시장에 충격을 주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만큼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버냉키의 양적완화 축소 발언은 앞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큰 흐름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돈 풀기로 경기부양을 하는 시대는 끝나간다는 것이다. 이런 정책 변화가 과연 실현될 수 있을지, 또 그럴 경우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대해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다. 어제 열린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정부가 원론적인 대응책만 내놓은 것은 이런 불안감을 더한다. 정부는 앞으로의 상황 변화에 대비해 더욱 정교하고 현실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 이후 지속되고 있는 경기 부진이다. ‘747’ 공약을 내걸고 출범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의 연평균 성장률은 2.9%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그 추이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계속된 경기 침체로 중견기업들이 잇달아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등 경기 하강세가 더 가팔라지고 있다. 이런데도 ‘버냉키 충격’은 일시적이니 큰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안이한 인식을 갖고 있다면 문제다. 지금 우리 경제는 “기초체력 양호” 운운하고 있을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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