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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6.24 22:05 수정 : 2013.06.24 22:05

국가정보원이 아예 막가파로 나가기로 작정을 했다. 국정원은 어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의 기밀 분류를 해제하고 전문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대통령지정기록물을 둘러싼 상식적인 법 해석도, 여야 합의라는 정치 과정마저 모두 도외시한 채 마치 군사작전 하듯이 감행했다.

국정원의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가 얼마나 불법적인 정치개입 행위인지는 다시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정원은 대선 개입에 이어 또다시 엄청난 국기문란 행위를, 그것도 보란듯이 저질렀다. 청와대의 승인 내지 지시가 있지 않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노골적이고 당당한 태도다. 국정원 결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남북정상회담 발언록 문제의 재점화는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시비 차단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새누리당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국정조사를 기를 쓰고 막는 것도, 국정원이 회의록 공개를 강행한 것도 따지고 보면 ‘박 대통령 보호’에 그 근본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안의 중대성이나 대통령과 국정원의 관계, ‘깨알 청와대’의 업무 태도 등에 비춰봐도 청와대는 ‘무관함’을 주장하기 힘들다.

국정원의 회의록 공개가 국정조사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첫 언급이 있고 난 뒤 곧바로 이뤄진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어제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며 “(국정조사는) 대통령이 나설 문제가 아니며 국회가 논의해서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질책은커녕 오히려 ‘국정원 힘 실어주기’ 기류가 물씬 풍겨나는 발언이다. 박 대통령이 어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보조금 부정 수급’ 문제를 “범죄행위”라고 규정하고 종합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나 대비된다. 박 대통령에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은 정부보조금 부정수급만도 못한 사안인 셈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최소한의 논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이 대선 기간 댓글 공작을 벌인 목적이 박근혜 후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라는 사실은 이미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데서도 확인됐다. 얼마만큼 도움을 주었는지, 당락에 영향을 끼칠 정도였는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국민이 박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며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마침표를 찍을 방안이 무엇인지 등에 대한 궁금증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전혀 동문서답을 하고 있다.

국정조사는 정치권의 소관사항이므로 청와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 역시 마찬가지다. 형식상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궁지를 모면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자신의 정통성 시비 문제가 국정조사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는 투명인간처럼 정치권에 밀어버리는 태도는 비겁하기조차 하다.

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에 앞서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와 남북정상회담 발언록 문제 등을 순리로 풀고 떠났어야 옳았다. 그런데 거꾸로 전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록 공개라는 어처구니없는 선택을 했다. 이래 놓고 중국 수뇌부와 어떤 내밀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성과 상식을 잃어버린 정부치고 순탄한 정권은 없었다. 현 정권이 저지른 중대한 판단착오의 후폭풍은 박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떠나 임기가 끝난 뒤에도 따라다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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