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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김영란법 중재안’으론 공직 부패 근절 못해 |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 제정안에 대해 국무총리의 중재안이 마련돼 곧 국회로 보내질 예정이다. 국무조정실은 3일 정홍원 총리가 이성보 국민권익위원장과 국민수 법무부 차관을 불러 중재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권익위와 법무부가 잠정 합의했던 안에 ‘직무와 관련해 또는 지위·직책에서 유래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한 금품수수는 대가와 관계가 없어도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조항을 추가한 것이 핵심이다. 업무와 관련 있는 금품수수도 과태료만 부과하도록 했던 잠정 합의안에 비해 강화된 것이긴 하나, 애초의 김영란법에 비해선 후퇴한 것이어서 공직자 부패 근절에는 미흡해 보인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 부패의 온상으로 지적돼온 스폰서 문화까지 뿌리뽑을 수 있도록 실효성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
김영란 당시 권익위원장이 만든 원안에는 공직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거나 요구하거나 약속받는 경우,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더라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받은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법무부가 “직무 관련성이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면서 벽에 부닥쳤다. 결국 권익위가 법무부의 반론을 받아들여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한테서 금품을 수수한 경우에만 처벌하고, 그것도 받은 액수의 5배 이하 과태료만 물리는 선으로 대폭 완화했다.
이런 잠정 합의안에 대해 비난이 잇따르자 이번에 총리가 나서 중재안을 마련했으나 문제는 여전하다. ‘직무 관련성’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데다 ‘사실상의 영향력’이란 표현도 애매해 결국 법원으로 해석의 책임을 떠넘긴 인상이 짙다. 이런 정도의 규정으로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공직 부패와 스폰서 문화가 말끔히 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법무부 쪽은 정당인 등과 달리 공직자만 강하게 처벌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주장도 하고 있으나, 정치인에 대해 법 테두리를 벗어난 일체의 정치자금 수수를 형사처벌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설득력이 없다.
법무부는 ‘과잉금지’ 운운했으나 자선사업가가 아닌 이상 이유 없이 공직자에게 금품을 건네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김영란법의 원안대로 법을 만들더라도, 받은 돈이 직무와 무관한 다른 이유에 따른 것이었음을 공직자가 명백히 입증할 경우 면책되도록 한다면 과잉금지 논란도 사라질 것이다.
결국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중재안보다는 원안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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