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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남북정상회담이 ‘정보수집’ 대상이라니 |
하경준 국정원 대변인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작성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인 정보수집을 위한 것이었다”, “2007년 10월에 만들어 청와대에 넘긴 대화록은 ‘중간본’일 뿐 2008년 1월에 만든 ‘최종본’은 청와대에 전달도 하지 않고 국정원이 보관해 왔다”는 등의 놀라운 발언을 했다. 그동안 참여정부 관계자들이 설명해온 대화록 작성 경위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으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국정원이 얼마나 엉뚱하고 소름 끼치는 사고에 젖어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는 예다.
외국의 정보기관도 아닌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 자기네 나라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을 ‘정보수집’ 차원에서 접근했다는 것은 참으로 기절초풍할 일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결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국정원 대변인이라는 사람이 언론 인터뷰에서 거침없이 하는 것은 그만큼 국정원의 왜곡된 현실인식과 오만방자함이 하늘을 찌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정원은 스스로를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과 대등하거나 그 위에 있는 기구로 자리매김해온 것이다. 국정원은 대통령의 행동과 발언까지도 계속 ‘염탐’하고 ‘사찰’해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하 대변인 말대로 제대로 된 보고서가 뒤늦게 완성됐다면 현직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것은 국정원의 당연한 의무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하 대변인은 최종본을 청와대에 알리지도 않은 행위를 무슨 자랑처럼 말했다. 하기야 당시의 정치 상황에서 국정원의 눈에 ‘떠나가는 대통령’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국정원은 이미 그때부터 이 대화록을 자신들의 무기로 활용할 생각을 굳혀 놓고 있었음도 분명하다. 국정원은 자기네 조직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국가의 정상적인 질서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조직임을 국정원 대변인 스스로 실토한 셈이다.
남북정상회담 때 사용한 녹음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하 대변인은 “녹음기도 애초 국정원 것이었으며 (우리가 빌려준 것이니까 청와대에서)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정황상 녹음기가 국정원 것이라는 설명부터가 별로 믿을 만한 것이 못 되지만 녹음기가 자기네 것이니 녹취록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식의 발상은 더욱 기가 막힌다. 이런 해괴한 논리로 정보를 사유화하려는 것이 국정원의 본모습이다. 결국 하 대변인의 발언은 국정원의 개혁이 왜 그토록 절실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잘 설명해준다. 정보의 생산과 보관의 기본 원칙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국정원에 위험천만한 칼을 계속 맡겨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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