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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7.09 19:30 수정 : 2013.07.09 23:04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3월22일 취임하면서 “나는 전사(戰士)가 될 각오가 돼 있다. 여러분도 전사로서의 각오를 다져달라”고 말한 것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역대 국정원장 취임사 중 가장 짧았다는 이 발언은 국정원의 환골탈태를 다짐하는 남 원장의 남다른 각오 표시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것은 헛된 기대였다. 남 원장이 말하는 ‘전사’는 국가안보를 위해 몸 바쳐 싸우는 전사가 아니라 ‘조직 보호를 위해 민주주의 법질서와 싸우는 전사’를 의미하는 것이 됐다. 이 과정에서 남 원장이 시대 변화에 걸맞은 국정원을 이끌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물임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남 원장은 ‘정보의 생산과 관리’라는 국정원의 가장 기초적인 업무에 대한 치명적인 결함을 노출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이 얼마나 중요한 극비문서인지, 이런 국가 기밀을 무단으로 공개할 경우 국익에 어떤 손상이 올 것인지 등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에게는 기본에 해당한다. 남 원장이 이런 것도 몰랐다면 국정원장으로서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것이다. 기밀의 중요성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 국정원장이 지휘하는 조직에서 정보가 제대로 생산· 관리되기를 기대하기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수장에게 요구되는 안정감과 균형감각, 정확한 상황판단능력도 남 원장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찬사처럼 따라다니던 ‘원칙주의자’니 ‘돌직구’니 하는 기질은 국정원장 취임 이후 오만한 비타협주의, 무작정 돌진주의 등의 가장 나쁜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더욱이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는 국회 답변에 이르면 그가 일반적인 상식과 이성을 갖추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국가보다 국정원의 명예를 앞세우는 논리도 어처구니없지만 그가 언제부터 국정원에서 일했다고 국정원의 명예를 입에 올리는지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는 남 원장이 이미 개혁 초심을 잃고 국정원 내부의 조직 논리에 침윤됐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엊그제 “개혁안을 국정원 스스로 마련하라”고 말했지만, 오히려 ‘남 원장의 사퇴’가 가장 큰 국정원 개혁으로 떠오른 상태다. 국기문란 행위 당사자한테 국정원의 일탈을 막는 개혁 방안을 마련하라는 것부터가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야권의 강한 반발 등을 고려할 때 그가 원장으로 남아 있는 한 조용하고 내실있는 국정원 개혁을 기대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깨끗이 물러나는 것이 그나마 ‘전사의 품위’를 지키는 길이다.

메이드인 국정원, 몸통을 찾아라(시사게이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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