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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8.24 21:35 수정 : 2005.08.24 23:41

사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오늘로 절반을 넘어선다. 반환점을 도는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목소리는 비난 일색이다. 우호적인 언사란 기껏해야 ‘회한’ 정도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했다. 2년반 전 그는 서민과 젊은이들의 지지로 참여정부를 열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갈망하고,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서민의 곳간은 빈자리만 커졌고, 일자리 찾아 헤매는 젊은이는 늘고 있다. 반면 부동산값 폭등은 불로소득자의 곳간을 차고 넘치게 했다. 빈부격차의 확대와 상대적 박탈감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안정기반을 다지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등’ ‘할 만큼 했다’고 노 대통령은 말하지만, 귀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럴 때 베트남의 호찌민 전 주석 같은 지도자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와 1, 2차 해방전쟁을 치르고 미국의 거센 공격까지 이겨낸 호찌민이었지만, 아무도 그를 대통령 각하나 주석 또는 장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호 아저씨’로 불리고 기억된다. 엄혹한 전쟁 속에서도 그는 따뜻함을 잃지 않았다. 그가 고난의 세월을 헤쳐오면서 지킨 세 가지 정신은 지금도 베트남 지도자들의 신념이 되고 있다. 함께 산다는 정신, 함께 먹는다는 정신, 함께 일한다는 정신이 그것이다. 요약하면 ‘민중 속에서’가 될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바로 그 ‘민중 속에서’를 실천한 사람이 노 대통령이다. 그들의 고통을 보고 느끼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과 맞서 싸웠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어떠한가. 우리는 그가 원칙을 버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권력의 성에 갇혀 현장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장을 잃어버린 신념은 공허하고 비현실적이다.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가 마구 쏟아놓는 거대담론들이 이를 증거한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일하는 사람의 바람을 듣고, 겉도는 젊은이들의 고통을 느끼고, 평범한 학부모들의 안타까움을 나누기 바란다. 이들의 아픔을 덜기 위해 시급한 건 무엇보다 양극화를 완화하는 일이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가 더욱 나쁜 건 단순한 성장률 지표보다 양극화 탓이 더 크다. 양극화 해소와 분배 개선은 성장과 대립하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균형 회복이 절실하다. 경기 활성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개방경제 체제 아래선 정부가 할 수 있는 경기대책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 주체들에게 안정감과 믿음을 주고 기업들이 투자할 분위기를 만드는 건 여전히 정부의 몫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은 비단 서민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뿐 아니라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부동산 시장에 쏠린 자금이 생산적 분야로 흘러간다. 투자에 별 도움을 주지 않으면서 자금흐름만 왜곡하는 저금리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지금 청와대엔 입 달린 사람이 한 명뿐이라는 빈정거림이 나돈다. 청와대에 입성해 6개월만 지나면 입만 남고 귀는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다. 대통령이 크고 작은 과제와 담론을 쏟아내고 결론까지 내려버리니, 어느 누가 입을 열 것인가. 소통할 사람이 없으니 현장도 멀리 사라진다.

임기 후반 노 대통령이 현장 속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노짱 아저씨’가 되어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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