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은 해법 아니다 |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방안이 정부·여당 안에서 비중 있게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안은 현행 교육과정과 수능 체제를 교란하고 학생들의 부담만 늘릴 뿐 본래의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역사교육 수업시수는 현재 357시간(한국사 289시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사는 고교 사회과 과목 가운데 유일한 필수과목이기도 하다. 여기에다 수능 필수과목으로까지 지정되면 학생들이 한국사 공부에 쏟아야 하는 시간은 더 늘게 된다. 사회탐구 10개 과목 가운데 2개를 선택하게 돼 있는 현행 수능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사회 과목은 존립 기반조차 취약해질 것이다. 한국사를 사회탐구에서 빼서 필수로 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이 경우 지금도 과중한 학생들의 부담이 더 늘어나 사교육 시장이 팽창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 효과 면에서도 한국사의 수능 필수과목화 주장은 편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다른 과목보다 수업시수가 많은데도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교육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선책을 찾기 위한 교육당국의 진지한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올바른 역사인식은 기본적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각을 종합할 수 있는 판단력을 전제로 하는데, 정답을 가려내는 데 치중해야 하는 수능 점수경쟁은 이를 보장할 수 없다. 교육의 역할을 점수경쟁으로 대체해서는 오히려 역사인식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여권이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화를 적극 검토하게 된 배경 또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6월17일 “고등학생 응답자의 69%가 6·25를 북침이라고 응답한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교육현장의 진실왜곡’을 거론했다. 하지만 실제로 진실을 왜곡한 사람은 엉터리 조사를 크게 부각시킨 박 대통령 자신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7월10일 ‘역사 과목은 평가기준에 넣어야 한다’고 했고, 25일에는 ‘국사를 편파적으로 가르치면 배우는 학생들한테 해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대선 때 유신체제를 옹호했던 그의 이런 발언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교실을 통해 확산시키려는 발상으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역사인식을 키우려면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교실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의 수업시간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 교육당국은 정치적 분위기에 휩쓸려 엉뚱한 데서 대책을 찾으려 하지 말기 바란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