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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명치료 중단, 신중하게 접근해야 |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31일 ‘연명의료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특별법으로 제정해줄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회생 가능성이 없고 임종 단계에 접어든 환자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2009년 연명치료 중단 소송에서 대법원도 “아무런 기준 없이 의사나 환자 본인 가족들의 판단에만 맡겨두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힌 바 있어 언제까지나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다만 생명윤리위원회의 권고안은 추정이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점이 우려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생명윤리위는 환자가 의사와 상의해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나 연명치료 중단 뜻을 담아 미리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가 있으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환자의 명시적 의사는 없지만 사전의료의향서가 있거나 가족 2인 이상이 환자의 뜻에 대해 일치하는 진술을 하는 때는 담당 의사와 전문의의 판단으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돌이킬 수 없는 말기 상황에서 존엄사를 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명시적 의사표시도 없고 환자의 뜻을 추정할 수도 없을 경우 대리인에 의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다. 곧 법정대리인이나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등 가족 전원이 합의하고 의료인 2인이 동의할 때는 환자의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리인이 없으면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논란의 핵심은 환자의 평소 신념과 가치관 등에 근거한 추정에 의한 의사표시, 가족 등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에 법적 효력을 부여할지 여부다. 대부분 환자들이 의식불명 상태로 존엄사에 이르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어떻게 추정하느냐 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종교계는 추정이나 대리인에 의한 의사표시를 인정하면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위배되고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의료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제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실제 의료현장에선 말기 환자나 가족이 경제적 부담을 우려해 혹은 가족에게 심리적 고통을 주지 않으려고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대리 결정이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특히 고아나 독거노인, 무연고자 등 적법한 대리인이나 가족이 없는 경우, 병원윤리위원회가 연명치료 중단 여부를 판정하는 데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병원에 결정권을 주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별도의 공적 감시기구를 둬 가족의 선택이나 의사 판단의 적절성 등을 재확인하는 절차가 보완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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