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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권세력의 오만이 불러온 ‘거리의 정치’ |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가 허송세월하면서 민주당이 원내외 병행 투쟁을 선언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31일 기자회견에서 서울시청 광장에 자신을 본부장으로 하는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 촉구 국민운동본부’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원외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김 대표는 “국민은 분노하고 민주당의 인내력은 바닥이 났다”며 “국민과 함께 국민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말했다. 협상을 통한 원내투쟁을 완전 배제한 것은 아니지만, 당분간 원외에서 여당을 압박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태도다.
민주당이 원외투쟁에 나서게 된 것은 무엇보다 새누리당의 국정조사 무력화 시도가 도를 넘은 탓이 크다. 새누리당은 그동안 고비마다 본질과는 거리가 먼 협상용 카드를 내세워 국정조사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어왔다. 국정원 사태의 곁가지도 안 되는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문제 등을 매개로 처음부터 억지를 부리더니 야당 반발이 거세지면 조금 받아주는 척하다가 국조가 정상화되는 듯하면 다시 억지를 부리는 특유의 밀고 당기기 전술로 정국을 쥐락펴락해왔다. 이렇게 해서 국조 기간 45일 중 30일이 파행됐다. 집권세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까지 공개해 국정원 정국을 물타기하려는 파렴치함까지 보였다.
여당의 물타기와 야당의 무능으로 좀처럼 국정원 사태가 풀리지 않자 시청 앞 광장의 촛불집회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조금씩 잦아졌다. 집권세력이 교묘한 정치놀음으로 당장 눈앞의 불이익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을 속일 수는 없다. 국민은 지금 대선 기간 국정원과 경찰의 조직적 선거 개입을 어물쩍 넘기려는 집권세력의 노림수를 훤히 꿰뚫고 있다. 국정원 여직원 인권유린 문제로 맞불을 놓는다거나, 국정조사에서 증인 몇 명 불러 증언을 듣는 시늉을 한다고 해서 국민의 분노를 비켜갈 수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태는 이제 그 본질적 국면에 이르렀다. 국기 문란 사건에 대해 근원적 처방을 내려야 할 때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물론이고 국정원의 대대적 쇄신 등 각종 개혁 조처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정원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인 남재준 국정원장의 사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이 나와는 관계없다고 발뺌할 일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남재준 원장을 경질하고 국정원을 새롭게 해야 한다. 집권세력은 더 이상 국정원 사태를 미봉하려 들지 말고 겸허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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