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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13 18:35 수정 : 2013.08.13 18:35

정부의 세법 개정안이 발표된 지 나흘 만에 박근혜 대통령이 서둘러 재검토 지시를 하고 나선 것은 여러모로 음미할 대목이 많다. 우선 세법 개정안에 대한 들끓는 민심을 곧바로 수용한 것 자체는 평가할 만하다. 만약 박 대통령이 ‘원안 고수’ 고집을 피웠더라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을 것이다. ‘조변석개’ 등의 비판이 뒤따르고 있긴 하지만 어쨌든 조기 진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

무엇보다 어안이 벙벙한 것은 세법 개정안 문제에 대해 자신은 아무런 관련도 없고 책임질 일도 없다는 투의 ‘구경꾼 화법’을 구사한 점이다. 세제 개편처럼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중차대한 정책 결정을 내리면서 청와대가 뒷짐을 지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박 대통령의 특기는 시시콜콜한 일에도 일일이 관여하는 이른바 ‘깨알 리더십’ 아닌가.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어디 먼 곳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시치미를 뚝 떼고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들에게 미뤘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세부 내용을 몰랐다’느니 ‘제대로 보고를 못 받은 것 같다’느니 하며 화살이 박 대통령에게 향하는 것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백보를 양보해 이런 중대한 정책결정 내용을 박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통령의 중대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정부와 여당이 우왕좌왕하는 낙후된 ‘일인 통치’ 문화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정책 수립 및 조율 단계에서 당-정-청이 긴밀히 협조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해야 옳다. 대통령의 지시 하나에 정책결정이 춤을 추는 부실한 국가운영의 궁극적 책임자는 바로 박 대통령인데도 본인은 성찰은커녕 그런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이 ‘민심’을 자신의 입맛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것도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시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단지 세법 개정 문제뿐이 아니다. 국가정보원의 불법 정치개입과 국가기밀 누설 등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범죄 행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보수적 분위기가 강한 대구지역 천주교 사제들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나선 것도 민심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더는 ‘모르쇠’로 일관할 일도, ‘구경꾼 화법’을 되풀이할 때도 아니다. 대통령이 민심에 귀 기울이고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국정 전반에 걸쳐 적용돼야 할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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