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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복지 증세’ 핵심 비켜간 세제개편 수정안 |
정부·여당이 13일 근로소득세 증가 기준금액을 애초 연간 총급여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높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세법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이다. 국민 여론을 신속히 반영한다고 서둘렀을지 모르지만 절차나 내용 모두 잘못됐다. 거듭 지적하지만 이런 식의 땜질식 졸속대책으로는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세제 개편이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세제를 이렇게 하루 만에 뚝딱 바꾸는 건 정상이 아니다. 세제는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사안일 뿐 아니라 국가 재정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문제다. 그런데 대통령 지시 한마디로 하루아침에 내용이 뒤집혔다. 세금 문제를 아주 하찮게 여기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민의 비판 여론을 벗어나기 위해 허겁지겁 기준금액부터 올리다 보니 내용은 더 엉망이 돼 버렸다. 정부는 애초 근로소득 과세 방식을 소득공제 방식에서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고, 세입 기반 확충을 위해 총급여 3450만원 이상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런 방향의 세제 개편은 나름대로 합리성을 갖춘 것이었다. 그런데 국민 불만을 수렴한다며 이를 후퇴시키다 보니 세수 기반 확대와 근로소득자 간 과세 형평성 제고라는 애초 취지도 퇴색해 버렸다. 애초 세제 개편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도 복지 재정 충당에는 턱없이 부족한 연간 2조5000억원밖에 안 됐는데 이번 개편안 수정으로 복지 재원 조달에는 더 차질이 커지게 됐다.
정부 여당은 왜 국민들이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분노하는지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물론 가뜩이나 힘든 상황에서 세금을 올린다는 데 좋아할 국민은 없다. 하지만 더 큰 불만은 부유층이나 대기업 등은 그대로 두면서 왜 만만한 봉급쟁이들 주머니만 털어가느냐이다. 너무나 정당한 저항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이런 불만을 그대로 들어줄 수만도 없다. 그렇게 되면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시대적 과제인 보편적 복지 확대는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되고 있는 감세 기조를 전면 철회해 고소득 자산가와 대기업 등에 대한 세금을 올리고, 동시에 근로소득자들에게도 개세주의를 적용해 누진적으로 세부담을 조금씩 늘려가야 한다. 복지 재원 조달을 위해서는 이런 방향의 세제 개편이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봉급쟁이들의 불만을 받아들여 근로소득세 부담을 줄이고, 대기업 등에 대한 감세 기조도 유지하겠다면 이는 복지 확대를 안 하겠다는 말과 같다. 박근혜 정부가 지금 그런 길로 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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