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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근혜 정부, ‘불법 엄단’ 말할 자격 있는가 |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으로 서울에서 열린 시민들의 집회에 물대포가 등장했다. 경찰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 일대 등에서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등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이던 시민들을 향해 최루액이 든 물대포를 쏘고 시위자들을 대거 연행했다. 다른 날도 아닌 민족의 최대 경사인 광복절 날, 민주주의를 되살리자는 시민들의 머리 위로 물대포 세례가 쏟아진 것은 오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경찰의 해산작전은 명백한 과잉진압이며 공권력 남용이다. 시위대는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치안질서를 크게 어지럽힌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도로를 점거해 교통에 불편을 초래한 정도다. 경찰이 최루액이 든 물대포를 마구잡이로 쏘아대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까지 실신하게 만들 만큼의 상황은 결코 아니다.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는 늘 그렇듯이 법질서 확립이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집단 불법 폭력으로 이익을 관철하려는 풍조에 적극 대응해 법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주장이다. 경찰을 비롯해 우리 정부 기관들은 지금 법질서를 운위할 자격도 없다. 국정원은 정치개입과 국가기밀 무단노출 등으로 법을 깡그리 무시했다. 경찰은 국정원 직원들의 정치공작 증거를 덮기에 급급한 사실이 드러나 수도 서울의 전 치안총수가 기소된 상황이다. 불법행위의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불법으로 이익을 관철한’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누가 누구한테 불법을 꾸짖고 법질서 확립을 훈계한다는 말인가. 참으로 염치없는 정부다.
검찰과 경찰의 최근 기류를 보면 정부가 아예 ‘촛불’에 ‘공안통치’로 맞서기로 마음먹은 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거리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의 ‘명박산성’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의 ‘차벽’이 등장하고, 대검 공안부 등에서는 “배후세력 엄단” 따위의 서슬 퍼런 엄포를 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산업화 시대의 경제발전 성과는 언급하면서도 민주주의 문제는 철저히 침묵했다. 민심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엉뚱한 방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 사태의 올바른 해법을 외면한 채 국민과 싸우려고만 드는 정부의 태도가 매우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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