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비정규직 해법 9월 국회에서는 결론 내야 |
13년 동안 초등학교 과학실에서 일했던 김아무개(53·여)씨가 17일 학교 운동장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비정규직 차별이 낳은 전형적인 비극이었다. 정규직인 행정직(지방공무원)은 60일의 유급 병가에 1년간 급여의 70%를 받으며 휴직을 할 수 있지만, 학교 비정규직은 아플 경우 연간 최대 60일의 유·무급 병가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차별 규정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고 간 주범이다.
학교 비정규직에게 차별은 병가에 그치는 게 아니다. 평균 연봉은 1605만3000원(평균 근속 5.3년 기준)으로 근속연수가 같은 정규직(2730만6000원)의 58.5% 수준이다. 전체 36만명의 학교 비정규직 중 77%(28만명)가 기간제이고 나머지는 무기계약직인데, 이들 모두 바람 앞의 촛불처럼 해고의 불안에 떨고 있다. 교장 아들의 결혼식 청첩장 2000장을 접어서 발송해야 했던 비정규직의 얘기 등 이들의 애환도 끝이 없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을 메우는 건 ‘인간적인 아픔’을 치유하는 것 이상이다. 최근의 한 연구결과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비정규직 비율을 10%포인트 축소할 수 있었다면 국내총생산이 3.17% 높아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노동소득 몫의 비율이 8%나 증가하고 소비가 7.3% 늘어난다는 계산이다. 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지난해 총선과 대선 때 여야 모두 최우선 과제로 들고나왔던 사안이다. 새누리당이 19대 국회 들어 맨 먼저 발의한 법이 사내하도급법이었고, 민주당도 여러 법률안을 제출했다. 그러나 말만 무성했을 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법률안들은 현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 단계에서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해결 방향에 대해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비정규직 사용을 엄격히 제한해 특별한 사유에 한해서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거나, 동일 노동에는 동일 임금을 줘야 한다는 원칙 등이다. 해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게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뒤 언론사 편집·보도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임기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대통령의 약속이 말로만 그치지 않도록 하려면 정부 여당이 나서서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는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실에 절망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이제는 끝내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