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황제경영’이 보호받아야 할 경영권인가 |
법무부가 내놓은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도를 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단체는 어제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경영권 위협, 투자 저해 등을 이유로 개정안의 핵심 조항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상법 개정안은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입법 예고됐다. 재계의 반대는 뚜렷한 명분이 없으며 이유 또한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것이어서 근거가 취약하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축인 상법 개정안이 후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재계가 가장 반발하는 부분은 ‘감사위원의 분리선출’ 규정이다. 개정안은 감사위원을 맡을 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 선임하고 대주주 의결권을 최대 3%까지만 허용하도록 했다. 지금은 일단 모든 이사를 선출한 뒤 이들 가운데 감사위원을 선출하다 보니 처음부터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분리선출은 감사위원의 감시 견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감사위원을 따로 선임하면 외국계 펀드가 이사회를 장악해 경영권을 빼앗을 수 있다는 재계의 주장도 현실성이 부족하다. 감사위원을 두도록 돼 있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의 상장회사 중에서 지분구조가 취약하거나 시가총액이 낮아 적대적 인수합병의 목표가 될 만한 회사는 없다고 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을 2조원 이상 상장사로 한정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펀드는 경영권을 노리는 펀드가 아니라 배당이익이나 시세차익을 얻고자 하는 뮤추얼펀드가 대부분이다.
재계가 반대하는 집중투표제도 마찬가지다. 집중투표제는 기업의 이사 선임 때 소액주주들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자신을 대변할 이사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개정안은 집중투표제를 자율적으로 도입한 상장사가 8% 정도에 불과해 일정 규모 이상부터 단계적으로 도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려는 뜻이다. 이같은 주주의 경영 참여 시도조차 경영권 위협이라고 하는 것은 과도한 자기방어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총수의 통제 밖에 있는 독립적인 인사가 단 한 명이라도 이사회에 들어와서는 안 되며 무소불위의 권한을 고수하겠다는 속셈이다.
경영을 감시해야 할 이사회는 거수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최근 재벌 총수들의 배임 횡령 사건도 이사회가 총수를 견제 감시하는 기능을 제대로 못한 데서 비롯됐다. 또한 주주총회장에서 소액주주들의 목소리는 외면받기 일쑤다. 상법 개정안은 후진적 지배구조의 개선을 목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것인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