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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3 18:58 수정 : 2013.08.23 18:58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의 과제는 수없이 많지만 단순화해 보면 민주·민생·평화의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적 기본질서와 가치를 증진시키고,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며, 나라 안팎을 평화롭게 하는 일이야말로 대통령이 펼치는 각종 정책과 인사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이기도 하다. 25일로 출범 6개월째를 맞는 박근혜 정부의 성적표를 이 기준으로 평가하면 어떨까. 안타깝게도 민주주의는 비틀거리고, 민생은 여전히 팍팍하기만 하고, 평화는 살얼음을 걷는 상태다. 이 가운데서도 민주주의 후퇴 문제는 가장 심각하다.

국정원 사태를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우리 사회가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가 실체적 현상임을 보여준다. 대선 기간의 댓글 공작,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무단공개 등을 통한 국정원의 노골적 정치관여는 이들의 일탈행위를 근원적으로 바로잡지 않는 한 정보기관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수로 남아 있을 것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침묵·외면하고, 여권은 국정원을 비호하고 이들의 일탈을 부추기기에 바빴다.

지금의 꽉 막힌 여야 대치 정국, 그리고 거리에 넘쳐나는 촛불은 민주주의 훼손의 결과물이자 그 자체가 민주주의 실종의 산 증거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상식과 이성에 바탕을 둔 소통과 대화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고집과 불통을 원칙과 신뢰로 잘못 이해하고, 여의도 정치에 대한 혐오를 대통령의 바람직한 정치 노선으로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여야 영수회담, 대통령의 유감 표명, 책임자 문책, 국정원의 제도적 개혁 등 다양한 해결 방법을 외면한 채 야당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으면서 정치적 공세만을 강화하고 있다. 거리에 경찰의 차단벽이 생겨나고,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가 발사되는 모습 또한 민주주의와 인권 경시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민주주의 문제와 관련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언론이다. 지난 정부 때부터 시작된 언론의 불공정·편파 보도는 더욱 심해지고 교묘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는 언론이 권력에 자발적으로 굴종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방송 보도 등에서 촛불이 실종된 지는 오래됐고, 해직 언론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대통령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들의 협조를 얻어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와 정치 발전을 위한 핵심적 요소다. 그것은 단지 민주주의 문제만에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이 나 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한 민생 향상과 평화 진척의 과제도 함께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집권 5년의 여정 곳곳에 세워진 100일, 6개월, 1년 등의 이정표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정표는 집권자가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6개월이라는 이정표 밑에서 지금의 정치상황을 비롯해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면 앞으로 남은 여정이 훨씬 순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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