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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재벌 총수에게 손 벌린다고 경제 살아나나 |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10대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 회동을 한다. 다음날엔 중견기업연합회 회장단 30여명과 오찬간담회가 예정돼 있다. 대통령이 기업인 만나는 것 자체를 탓할 이유는 없다. 기업인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눈다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의 대통령과 재벌 총수 회동은 시기적으로나 내용상으로 그리 적절치 않아 보인다.
우선 대통령과 재벌 총수 회동이 야당 대표와의 만남보다 시급한 것인지 의문이다. 현재 정국은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치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꽉 막혀 있다. 야당은 이를 풀기 위한 방안으로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이를 외면한 채 재벌 총수와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정원 사건을 둘러싼 여야 대치를 정쟁으로 몰아붙이며 자신은 민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모르지만 이는 단견이다. 정치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다른 국정 현안도 표류하게 된다.
정부가 기대하는 회동의 성과도 불투명하다. 정부는 재벌들에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고, 재벌 총수들은 일단 최소한의 성의라도 보일 것이다. 재벌들이 이렇게 억지춘향 식으로나마 투자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늘린다면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이런 식의 쥐어짜기로는 경제가 온전히 살아나길 기대하기 어렵다. 역대 정권마다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 재벌 총수들을 만나 투자 확대를 구걸하다시피 했지만 결과는 별게 없었다. 재벌 힘을 빌려 경제를 살리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오히려 부작용만 더 커질 수 있다. 재벌들은 이번 회동을 최대한 활용해 자신들의 민원을 해결하려 할 것이다. 투자를 늘릴 테니 ‘투자규제 대못’을 제거해 달라는 식이다. 현재 재벌의 황제경영을 견제할 상법개정안 등이 추진되고 있지만 재벌들은 극력 반대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 입법 대기 중인 경제민주화 법도 여럿 있다. 재벌들은 정부로부터 이런 걸림돌을 해결해 주겠다는 ‘현찰’을 챙기고, 앞으로 투자를 늘리겠다는 ‘약속어음’만 발행하고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할 일은 기업들이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제도와 규칙을 정비하고 이를 엄격히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재벌 투자 확대를 유도한다는 명분 아래 재벌들의 비정상적인 불법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던 잘못된 관행을 되풀이해선 경제활성화는커녕 후진적인 경제체제만 더욱 심화될 뿐이다. 그래서는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양적·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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