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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산은 민영화 정책 실패 엄중히 책임 물어야 |
정부가 산업은행 민영화를 중단하고 정책금융공사와 산은을 통합하겠다고 27일 밝혔다. 정책금융공사의 업무는 산은과 수출입은행 등으로 이관하고, 정책금융 기능을 맡을 통합산은은 내년 7월 출범시키며 민영화를 전제로 만든 산은금융지주는 해체한다고 한다. 막대한 비용과 상당한 진통과 혼선을 불러일으키면서 5년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명백한 정책 실패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런 상황을 만든 정책 당국자들에게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정책금융공사는 2009년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분리됐는데, 올해 초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산은 민영화 계획이 백지화되면서 산은과의 업무 중첩 문제가 불거졌다. 이번에 내건 통합 명분은 정책금융의 효율화로, 낯두껍게도 4년 전 분리할 때와 똑같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반대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나서는 금융산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통폐합의 기로에 놓인 당사자들과 시장 참여자들은 또 얼마나 혼란스러울 것인가.
이명박 정부는 국책은행인 산은이 민간금융시장에 침투해 금융질서를 교란한다며 민영화 계획을 추진했다. 정책금융만 전담하는 정책금융공사를 출범시키고 산은은 아예 민영화해 국제적인 투자은행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무리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시장 여건 악화로 산은 민영화의 추진 동력이 떨어지고 정책금융공사는 자체 수익구조를 갖지 못한 채 산은과 유사 업무를 수행해 중복 경쟁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통합을 하게 되면 산은의 소매금융 업무를 축소할 수밖에 없어 지점 확대와 전산망 구축 등에 들어간 수백억원이 매몰비용이 될 수밖에 없다. 두 기관의 인력 구성도 비대해져 통합 과정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통합으로 재무건전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종합적 검토 없이 공청회도 한번 제대로 열지 않은 채 통합 논의가 졸속으로 이뤄지는 것은 문제다. 금융위원회는 금융 수요자인 기업의 입장을 배제한 채 공급자 독점 체제로 가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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