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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 대통령, 끝내 경제민주화 폐기하고 재벌 편에 서나 |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10대 재벌 총수들과 만나 “정부는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옥죄기나 과도한 규제로 변질되지 않고 본래 취지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또 “논란이 되고 있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도 잘 알고 있다”며 “그 문제는 정부가 신중히 검토해서 많은 의견을 청취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축인 상법 개정안을 필두로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폐기하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의 청와대 회동은 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는 민감한 시점에 이뤄져 우려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박 대통령이 재계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는 듯한 자세를 취함으로써 우려가 현실화되고 말았다. 상법 개정안은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목적으로 박 대통령이 공약한 사안이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자는 취지인데 기업 부담을 고려해 최소한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재계의 반대는 명분이 약하고 결국 총수의 통제 밖에 있는 독립적인 인사가 단 한명이라도 이사회에 들어오지 말라는 억지에 가깝다. 박 대통령이 끝내 재벌 편을 들어준다면 재벌개혁은 물건너가고 경제민주화 폐기를 공식화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중심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로잡아 중소기업과 서민도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재벌의 비정상적인 불법행위를 적당히 눈감아주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음으로써 왜곡된 경제질서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경제민주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셈이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입법 대기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도 여럿 있다.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로 재벌을 옥죄거나 규제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경제민주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됐다. 국민은 박 대통령이 야당에 비해 경제민주화 약속을 잘 지킬 것으로 보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상황이 이런데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하는 둥 마는 둥 6개월 만에 그만두겠다는 건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대통령이 재벌들과 밥 한번 먹고 이런저런 거래를 한다고 해서 경제가 나아지지는 않는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아는 일이다. 경제민주화로 시장 질서를 바로잡아야 서민경제와 창조경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이 과거로 퇴행을 거듭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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