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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묘한 시점에 이뤄진 통합진보당 수사 |
국가정보원이 어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을 비롯해 당 간부와 당직자들의 집·사무실 등 10여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구체적인 혐의는 확인되지 않지만 내란 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올해 초 북한이 정전협정 백지화를 언급한 뒤 모임을 열어 이에 대비한 물리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었다는 식의 얘기가 흘러나오지만 검찰과 국정원은 공식 확인을 않고 있다.
실제로 내란 음모에 해당하는 수준의 범죄행위가 있었다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제도정치에 진입한 국회의원과 정당 간부들이 과연 그런 행위를 했을지 쉽사리 믿기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단계에서 섣불리 사건의 진위를 예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의문에 대해서는 공안당국도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우선, 대단한 중범죄에 속하는 ‘내란 음모’에 해당할 만큼의 범죄행위가 실제로 있었느냐의 문제다. 형법 87조에서 말하는 ‘내란죄’는 ‘국토의 참절 또는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하여 폭동하는 죄’를 말한다. 즉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 불법적 권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위력이 있는 폭동행위가 있어야 한다. 보수언론이 폭동으로 표현한 ‘5·3 인천 사태’에도 공안당국은 내란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국민의 투표로 심판받겠다고 제도정치에 들어온 정당의 의원이 과연 그런 수준의 행위를 도모했을까 하는 상식적 의문이 드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랫동안 수사를 해왔다는 국정원이 왜 하필 지금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에 들어갔느냐 하는 점이다. 국정원은 지금 선거와 정치에 개입한 국기문란의 범죄행위로 전직 국정원장이 재판을 받는 등 위기에 처해 있다. 시국선언과 촛불시위가 이어지면서 지금이야말로 조직을 대폭 축소·개편하는 등 철저하게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야당은 예산을 대폭 삭감할 뜻도 밝혔다. 이런 점 때문에 국정조사를 앞두고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해 물타기를 시도했던 ‘남재준 국정원’이 이번엔 국정원 개혁 요구에 맞서 ‘종북몰이’로 칼날을 피해 가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과 과거 국정원 행태를 종합해보면 이번 수사를 순수하게 봐주기 힘든 측면이 적잖다.
물론 분명한 국기문란 행위가 있었다면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다른 의도를 갖고 혐의를 과장·왜곡했다가는 개혁의 칼날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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