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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진보당 사건, ‘사실과 증거’만이 중요하다 |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수사는 사안이 지닌 메가톤급 폭발성에 비해 아직까지 사실관계가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국정원이나 검찰의 공식 설명도 없이 출처가 불분명한 각종 언론보도만 무성할 뿐이다. 제3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섣부른 예단을 삼간 채 사건이 법과 원칙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처리되는지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정원은 어떤 부풀림도 없이 명백한 증거를 통해 진보당 관련자의 혐의를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평범한 시민들이 이 사건을 접하며 느끼는 상식적 의문은 ‘통합진보당이 뭔가 꼬투리를 잡힐 짓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과연 현실적으로 내란음모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하는 데 모인다. 실제로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피의자들이 구체적으로 내란 계획을 세우고 또 실제 실행 능력이 있다는 점 등이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치된 견해다. 일부 정치적 과격분자들 사이에 오간 발언에 내란음모라는 엄청난 딱지를 붙인 것은 아닌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 공안당국이 거창하게 터뜨렸던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서울대생 내란예비음모 사건’ 등의 결과가 어땠는지를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만약 국정원이 ‘일단 사건을 터뜨렸다가 나중에 흐지부지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수사 결과가 ‘태산명동서일필’에 그친다면 그 책임은 단지 국정원 차원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진보당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이야말로 무덤에 파묻힐 것” 등의 격앙된 외침으로 해결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사실 진보당은 지난 총선의 부정경선 사태 등을 거치며 국민의 신뢰를 많이 잃었다. 따라서 국민의 눈높이와 법 감정 등을 더욱 의식하며 수사에 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이석기 의원이 하루 동안 잠적했다가 뒤늦게 나타난 것 등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비록 지금은 말 한마디 한마디가 민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진보당은 국회에 의석을 가진 공당답게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좀더 솔직하고 정정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사의 공정한 진행을 위해서는 공정하고 정확한 언론보도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이미 국정원의 혐의 사실 흘리기와 언론의 받아쓰기식 보도, 여론재판식 보도 등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이석기 의원이 변장을 하고 택시를 타고 잠적했다’는 따위의 보도도 난무한다. 거기다 선정적 보도로 정평이 난 종합편성채널들의 존재까지 고려하면 언론보도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런 점에서 수사당국이 수사 진행 과정을 공식적으로 브리핑할 필요도 있다. 피의사실 공표죄 등의 법적 걸림돌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사안의 중대성, 국민의 알권리, 이번 수사에 쏟아지는 의혹 등을 고려할 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게 수사당국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출처도 불분명한 기사가 마구잡이로 양산되는 것보다는 수사 브리핑을 공식화하는 것이 언론보도의 부작용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이번 사건이 결코 국정원의 정치개입 문제를 희석하고 개혁의 당위성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그동안 국정원 개혁의 핵심 내용으로 꼽혀온 것이 바로 국정원의 수사권 박탈인데 국정원은 보란듯이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이번 수사가 부풀리기 수사, 덮어씌우기 수사가 아니라 엄정한 법과 원칙, 증거를 기초로 진행되는지를 더욱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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