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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기륭은 약속을 지켜라 |
1895일이라는 기나긴 투쟁 끝에 지난 5월 첫 출근을 했던 기륭전자(현 기륭이앤이) 여성 노동자 10명이 다시 원치 않는 투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6년의 농성과 2년 반의 복직 유예기간을 합쳐 8년 넘게 기다린 출근이었지만, 회사 쪽이 합의사항을 전혀 이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요구는 세 가지다. 생산시설 설치, 체불임금 지급, 경영투명성 보장이다. 이 가운데 생산시설 설치는 회사도 어려운 만큼 당장 이뤄질 사안은 아니다. 회사는 이미 공장 부지와 중국 공장, 신사옥 건물을 매각한 상태다. 또 현재 ‘시가총액 40억원 미만인 상태가 30일 연속 지속되는 등의 사유로 증시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체불임금을 지급할 정도의 형편은 돼 보인다. 회사가 소액 공모,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자금 19억원을 유치했고, 7월부터는 재무팀 직원과 상무이사를 채용했으며, 운전기사까지 채용면접을 본 상태라고 한다. 사람 뽑을 돈은 있으면서 임금을 못 준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경영을 투명하게 설명해야 한다. 이는 다른 말로 ‘인간에 대한 예의’다. 1895일이라는 장기투쟁을 불러온 것도 노동자를 일회용처럼 다루는 무례함이었다. 8년 전 회사는 문자 하나 날리면서 해고를 통보했다. 해고 사유도 그저 잡담이라고 했다. 노동조합을 결성한 노동자들도 차례로 해고해 버렸다.
기륭 노조는 그 뒤 실로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투쟁을 다했다. 90일이 넘는 단식농성, 삭발투쟁, 서울시청 앞 고공농성, 한나라당 당사 앞 집회 등등. 이런 어려움 끝에 2010년 11월 국회에서 ‘비정규직 조합원 10명 직접 고용 및 복직’이라는 노사 합의를 이끌어낸 것이다.
회사는 약속을 했다. 그것도 국회에서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합의문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회사는 요즘 신규투자를 받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노동자 10명과의 약속도 지키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회사를 믿고 선뜻 거액을 투자할지 의문이다. 진정 회사를 살리려면 한번 한 약속은 지킨다는 신뢰의 모습부터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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