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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황당무계하고 충격적인 ‘진보당 녹취록’ |
지난 5월 통합진보당의 한 모임에서 있었다는 토론의 녹취록 내용은 한마디로 충격적이다. 통합진보당 쪽은 “날조 수준으로 심각하게 왜곡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나오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문제 발언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5월12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강당에서 열린 모임에서 이석기 의원은 “전쟁을 준비하자”며 토론을 주문했고, 130여명의 참가자들이 7개 권역별로 분임토의를 한 뒤 그 내용을 발표한 것으로 녹취록에 나온다.
녹취록에는 참석자들의 시대착오적인 현실인식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당장 전쟁이라도 임박한 듯이 “미 제국주의 군사체계를 끝장”내기 위해 “즉각 전투태세로 돌아갈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준비”하자는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앞으로 비정규전이 전개될 것”이라며 “군사적 위협 국면이 더 조성되면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주장에 어느 국민이 공감하겠는가.
관념적 과격성이란 말로도 부족한 황당무계한 사고방식도 엿보인다. 과연 어떤 생각과 준비를 해왔기에 “전기·통신 분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평택 유조창 탱크 폭파”를 운운하는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 한둘이 아니다. “북한의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라며 “다 상을 받아야 돼”라는 대목에 이르면, 과연 대한민국의 현역 의원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말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녹취록을 읽다 보면 갑자기 시간이 수십년 뒤로 거꾸로 흘러간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당혹감이 몰려온다. ‘장난감 총 개조’ 운운하는 대목에선 그 관념성과 맹목적인 과격성에 할 말을 잃게 된다. 녹취록 내용대로라면 당시 참석자 대부분이 시대착오적인 상황인식과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30일 “총기 마련과 시설 파괴를 논의한 적이 없다. 전쟁 발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반전 평화 운동을 어떻게 할 것인가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였다”며 녹취록 내용이 왜곡됐다고 반박했다. 국정원 쪽이 녹음파일까지 있다고 한 이상 사실 여부는 곧 가려질 것이다.
만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녹취록 내용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우리 헌법에 따른 의회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또 스스로를 ‘진보’로 부르는 것도 삼가야 할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런 처신과 행태 때문에 수구보수세력에게 빌미를 제공하고 진보진영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대 변화에 따른 고민과 혁신 없이 흘러간 이념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이와 별개로 이들의 행태가 내란음모에 해당하는가 하는 법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자극적인 발언의 수준을 넘어 실제로 물리적 준비 등의 행위가 있었는지, 이들의 발언이 실천 가능한 내용인지 등에 대한 엄격한 검토도 필요하다. 또 이렇게 중대한 사안에서 녹취록이 비정상적으로 공개되는 등 국정원의 여론몰이 구태가 되살아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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