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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 수사로 드러난 복마전 원전 비리 |
부산지검 동부지청 원전비리수사단이 10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고 105일간의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원전비리 수사단은 전국 7개 검찰청과 동시에 진행한 수사를 통해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등 원전 관련 기관의 전·현직 임직원 22명을 포함해 모두 97명을 기소했다.
애초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는 납품 비리 전반과 수주 로비로 확대돼 규모나 내용 면에서 적잖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검찰은 박 전 차관을 기소하는 데 그치고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에 대해서는 무혐의 결론을 내렸으며, 이상득 전 의원에 대해서도 별다른 혐의를 포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원전 브로커가 거액의 로비 자금을 업체에 요구한 사실 등이 드러난 만큼 앞으로 남은 수사에서 정치권 실세에 대한 금품 로비 의혹을 밝혀내야 할 것이다.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원전 비리는 복마전 그 자체였다. 사건의 발단이 된 제어케이블 수사를 통해 검사업체들이 시험성적서를 위조하고 한수원 직원들이 이를 묵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수많은 중소 납품업체가 부품의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고 한다. 불량 부품 납품에 그치지 않고 아예 가짜 국산화 기술로 핵심 부품을 수의계약한 사례도 있었다니 생선가게 고양이가 따로 없다. 금품 로비는 국내 원전 납품 청탁에서부터 직원 인사 청탁에 이르기까지 온갖 데로 뻗쳐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원전 수출 과정에서도 로비와 금품 제공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수원 부장 집에서 수출 원전에 대한 납품 편의 제공 대가로 대기업으로부터 받은 5만원권 현금 6억원이 발견됐다고 하니 로비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정권 실세에 줄을 대고 치열한 로비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박 전 차관에게 5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는 원전 브로커는 ‘아랍에미리트 공사 계약을 하려면 박 차관에게 돈을 줘야 한다’며 업체에 거액의 로비자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관계 금품 로비의 뚜렷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고 대기업 등 다른 업체의 로비 의혹을 밝히지 못한 점은 아쉽다.
한수원은 그동안 싼 발전단가를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다는 기술 개발과 납품 독촉을 일삼아왔는데 이런 잘못된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또 국산화 기술만 획득하면 납품을 독점할 수 있고, 납품부터 관리까지 한 직원이 담당해 결탁 유혹이 클 수밖에 없었던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원전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전력 수급 정책을 바꾸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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