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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무상보육 공약한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
정부가 영유아보육료 국고보조율을 현재보다 10%포인트만 올리자고 지방자치단체에 제시했다고 한다. 이럴 경우 국고보조율은 서울의 경우 현행 20%에서 30%로, 지방은 50%에서 60%로 상향 조정된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국고보조율은 서울 40%, 지방 70%다. 이 개정안을 없던 일로 치고 개정안보다 10%포인트씩 깎자고 흥정에 나선 꼴이다.
그동안 무상보육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서울시 사이에는 날카로운 신경전이 이어져왔다. ‘추경예산을 편성하라’ ‘예산이 없어 못한다’는 논쟁이 있었고, 지금도 4자 토론이냐 양자 토론이냐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고보조율을 깎자고 제안했다고 하니, 그 모든 소란이 결국은 국고보조율을 낮추기 위한 사전포석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든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무상보육을 10대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도, 이를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갈 계획은 전혀 없었던 셈이다. 영유아보육법은 보건복지위를 통과할 때만 해도 여야 모두의 박수를 받았으나,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가자 기획재정부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기재부는 국비 지원 비율을 늘리면 1조4000억원이 추가로 든다고 난색을 표시하면서,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국회에 전달했다고 한다. 뒤늦게 새누리당도 이 법의 절차를 문제 삼고 나섰다. 예산이 따르는 법안인 만큼 종합적인 재정계획 틀 안에서 다뤄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아예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사이 서울시에서는 9월분 영유아보육비가 바닥이 났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결국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심정으로 지난 5일 박원순 시장이 지방채 발행을 통해서 2000억원의 예산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나름 결단을 내린 만큼, 그다음은 정부·여당이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일처리 순서에 맞는다. 그런데 갑자기 국고보조율을 깎자고 나서니,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변화는 마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선거 때는 무슨 얘기를 못하나”라고 말했던 걸 연상시킨다. 무상보육 공약으로 덕을 본 사람은 박 대통령인데, 들어가는 돈은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고 있으니 이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거듭 말하지만 무상보육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었지,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시작한 일이니 끝까지 책임지려는 노력도 박 대통령의 몫이다.
무상보육, 박 대통령이 결자해지해야[한겨레케스트#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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